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글이 Oct 21. 2023

#22 '우울증 치료 일지' 21회차.

21회차. 무기력한 헬린이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데도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는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앞서 밝힌 바 있듯이 나는 씻는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고 있다.

운동을 하면 땀이 뻘뻘 날 테고 씻는 것은 당연한 문제지만 

나에겐 그 당연한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헬스장에는 샤워시설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나는 샤워시설을 단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일단 씻는 행위 자체가 싫었고, 

혼자 부끄럽고 어색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씻는다는 것은 나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바로 씻기로 다짐했지만 그 마음은 며칠 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제 발생. 씻기 싫어서 헬스장에 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 버린 것이다.

왜 이렇게 씻는 것이 힘들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씻으려고만 하면 소파에서 발이 안 떼어지고 침대에서 꼼짝도 할 수 없어진다.

운동을 다녀와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땀이 금방 마른다.

그럼 당장 씻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해지고 끝까지 미루다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이나 되어서는 겨우 씻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다 이제는 씻는 것이 두려워 아예 헬스장을 가지 않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헬스를 갈 생각을 하니 너무 부담스럽고 두 달째 아직도 헬린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다. 운동이 늘지도 않고, 몸무게가 줄어들지도 않고, 

씻는 것도 익숙해지지 못했다. 허무하기도 하고, 허탈하고 답답하고 막막하다. 

도대체 왜 이런 노동을 하고 있는 걸까. 남은 한 달이 얼른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남은 한 달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남들은 운동을 하고 나면 개운하고 뿌듯하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뿌듯함이란 없다.

의지까지 바닥나서 겨우겨우 가고 있는 수준이다. 

이렇게 억지로라도 운동을 나가는 게 정말 좋은 일일까?


-> 운동은 당연히 좋아요. 하는 게 훨씬 좋죠.

-> 일단 운동 자체는 되게 긍정적인 느낌이 있어요. 대신 뿌듯함을 느껴야 하는데

->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더 많네요.

-> 약을 조절해서 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다시 맞춰 봅시다.


약을 추가하는 것으로 약을 다시 조절했다.

헬스장 문제뿐만 아니라 요즘 내 머릿속에 가득 찬 우울하고 부정적인 생각은 엄마의 병이다.

엄마는 암환자라 대학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다.

지난주에 엄마랑 같이 병원에 검사 결과를 보러 갔는데 갈 때마다 신경이 예민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행동이다.

괜찮게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에 혹이 생겼단다.

암이랑 관련된 건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갑자기 혹이 생겨서

계속 지켜봐야 한단다. 다시 한번 심장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너무 걱정되고 슬퍼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엄마를 간호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매번 검사를 갈 때마다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한다니 참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만큼 바르고 선하게 살아온 사람이 또 어디 있나 싶을 정도인데 엄마가 정말 안쓰럽다.

병원에 갔다 오는 날이면 엄마랑 또 잘 살아보자 마음을 다잡는데

내가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으니 희망차다가도 금세 우울해지곤 한다.

매일 나가서 바깥바람을 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것도 보러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추억도 많이 쌓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러워진다.

나는 매일 침대에 누워서 슬픈 생각이나 하고, 우울한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데

마음이 좋을 리가 있을까. 


- 몸이 안 일으켜지는 게 무기력증인가요?

-> 무기력증이긴 한데 동글씨는 너무 많은 생각 때문에 오히려 몸을 못 움직이는 것 같아요.


정답이다.

나는 너무 많은 생각에 늪처럼 빠져 버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하고 싶은 일도 점점 줄어든다.

엄마를 걱정하고 있다고 해서 병이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매번 검사마다 그 벽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

엄마와 함께 힘써서 병을 물리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눈물이 나진 않지만 굳이 눈물 나는 상황을 상상하는 나는 도대체 어쩌고 싶은 걸까?

무기력을 점점 받아들이고 있는 형상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러다간 정말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니...


21회차. 무기력한 헬린이 끝


이전 22화 #21 '우울증 치료 일지' 20회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