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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이 Oct 21. 2023

#24 '우울증 치료 일지' 23회차.

23회차. 결혼식 vs 장례식

지난주 토요일에 헬스가 끝났다.

3개월 동안 3kg이 쪘고, 근육량은 그대로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10kg이 늘어날 걸 3kg 밖에 안 늘어났다고 기뻐해야 하는 건지

마음이 굉장히 심란하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간다고 간 건데 결과가 없으니까 너무 허무하기도 하고,

끝냈다는 마음에 시원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시원섭섭한 감정이 든다.

운동은 긍정적인 기운을 준다고 하지만 헬스장은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재신청을 하지는 않았다. 왔다 갔다 하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집에 운동기구를 들여보자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적게 차지하면서도

유용하게 쓰인다는 스텝퍼와 훌라후프를 장만했다.

오래전부터 실내용 자전거는 구입해 뒀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될 일이었다.

계획을 세웠다고 해서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집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 머리가 흔들리면서 영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어지럼증이 생겼다.

가끔씩 그런 증상이 나를 괴롭고 무섭게 만드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빈혈인가 싶기도 하지만 괜히 오버해서 생각하나 싶기도 하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미래에 어떤 것을 생각하려 할 때면 그만 접어버리자.

생각이란 것을 의식적으로 하지 말자. 지금, 오늘을 그냥 살아보자.

계속 다짐하고 있는 것들이다.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한 복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살아갈 수는 없지만 조금 덜 불행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힘이 길러진다면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맞이하더라도 담담하고 의연하게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단단하고 멋진 인생이 기대된다.


현재 마인드 컨트롤이 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에서인데, 나에게는 결혼이 그것이다.

결혼식 시즌이라 소식이 많이 들려오기도 하고 나이가 나이인지라 아무렇지 않게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결혼은 나를 언제나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중이다.

집에서도 항상 끊이지 않는 대화다. 아무래도 내 결혼이 다들 걱정되는 눈치라

누가 시집을 간다는 소식만 들려오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는 얘기가 가장 많이 나온다.

혹 눈치챈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남자친구가 없다.

남자친구 이야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남자친구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남자친구가 한평생 없었다...

놀라는 사람들도 있고,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아무런 감정이 없다. 말 그대로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있는 외로움이나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나는 당연히 혼자였기 때문에 오히려 옆에 누가 있다면 불편하고 신경이 쓰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연애를 거부하는 사람이라거나 비혼주의자라는

것은 아니다. 남자친구 대신 나에게는 10년을 넘게 열렬히 좋아하고 있는 아이돌이 있다.

그들의 역할이 내 삶에는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현재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큰 부분을 차지할 예정이다. 좋은 영향력을 선물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도 언젠가는 모든 것을 다 줘도 아깝지 않을 짝꿍을 만나 

결혼에 골인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것이 있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는 이제 나에게도 흠이 있음을 인정하곤 한다.

나는 너무 겁이 많은 사람이라 상대방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다가오는 사람도 매정하게 쳐내느라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놓치고 살았다. 지금에서야 내가 그때 그 사람들을 만나봤더라면

좀 더 여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막상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이 결혼은 당장 못할 것 같고,

당장 죽는 건 가능한 일이니까. 지금 죽는 게 적기인가? 싶은 거다.

부모님께서 많은 결혼식을 다니면서 축의금을 냈으니 나도 어느 정도 다시 돌려받아야 하는데

이런 경조사는 품앗인데, 우리 집은 그럼 어떡하지? 아, 내 장례식에서 걷으면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아빠도 지금 창창하고 인맥이 많이 남아 있을 때

결혼식 대신 장례식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갈 때까지 만큼은 집에 도움이 조금이나마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 

지금이 딱인데.


-> 또 이상한 생각이 나네요...

- 이상한 생각인데 최근에 한 생각 중에 제일 현실적인 생각이었어요.

-> 일단 미래를 너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현재만 봅시다.

->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거에 집중하고 약 잘 챙겨 먹어요.


철없는 생각.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말.

부모님께 큰 상처가 될 거란걸 알면서도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멈추지 못했을까. 

생각보다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생각회로가 고장 나서 자꾸 그런 생각으로 흘러가는 건지

내 마음이 진심을 다해 그러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

더 이상의 불편하고 불안한 생각은 날려버리려 한다.

누구든 그런 마음을 먹고 있다면 마지막 자존심은 꼭 지키며 살아남길.


23회차. 결혼식 vs 장례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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