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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이 Oct 21. 2023

#25 '우울증 치료 일지' 24회차.

24회차. 벌써 일 년

감정의 기본값은 우울함과 불안, 여전한 과다 수면.

마음의 문제라고 하기엔 마음을 들여다볼 힘조차 남아 있지 않는 지금.

나는 여기서 뭘 더 해야 할까? 내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이번엔 엄청난 의지를 한 번 불태워 봤다.

그 결과 지난주에는 조금 진정이 되면서 조절이 된 듯했는데

이번주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여전히 폭식을 한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의 반복이다.

최근에 잘한 일이라고는 속눈썹 연장에 도전했다는 점이다.

옛날부터 해보고 싶던 속눈썹 언장을 드디어 하게 됐다.

눈이 아프진 않을까, 시리진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고 갔는데

다행히 아무렇지도 않고 편안하게 시술을 마칠 수 있었다.

새로워진 속눈썹으로 약간의 기분 전환이 되는 듯했고,

친구들을 만나는데도 조금 더 자신감 있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벌써 일 년이다. 선생님과 일 년을 넘는 시간을 함께했다.

그러면서 진료 자체에 대한 고민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매번 같은 범주안에 있는 내용인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문제들이

생기면서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잠, 폭식, 씻는 문제 같은 것들은 꾸준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지난주에 이게 좀 불편했으면 다음 주엔 저게 좀 불편해지고,

오늘은 또 다른 문제로 조금씩 다른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그 틀은 당연히 우울과 불안이겠지만 말이다.

너무 하나하나 세세하게 짚어서 그런지 오늘 조금 내일 조금

지난주에 조금 이번주에 조금 달라졌다가

조그만 것에도 일희일비하며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도 되는 건가?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러한 와중에도 좋아진 점을 생각해 보면 모자를 쓰지 않고 병원에 잘 내원하는 것,

규칙적으로 약을 잘 챙겨 먹는 것, 친구들을 가끔 만나는 것이 있다.

마음가짐부터가 혼자 있었던 것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 좋은 걸 생각하면 영원히 그 부정의 늪에 빠져버리곤 하는 게

다시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계속해서 우울하고, 강박적인 것도 심하고 불안하다.


- 선생님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처음 진료를 받으러 왔을 때에 비하면 훨씬 많이 좋아졌어요.

->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못했잖아요

-> 대학 졸업하고 5년을 그냥 있었잖아요. 지금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하고 있어요.

-> 물론 그게 본인이 정한 기준에 충분하지 않아서 만족이 안 될 수는 있겠지만

-> 그때는 아무것도 못하고 자꾸 미루게 되고 강박적인 것 때문에 아예 시도 자체도 못했고,

-> 그러다 본인이 정말 용기를 내서 진료를 받으러 왔는데

-> 이후부터는 정말 많은 변화들이 생겼던 것 같은데요?

-> 운동도 해보고, 책도 읽어보고, 물론 이렇게 꾸준하게 뭘 해서 성과를 내는 게 아니다 뿐이지

-> 그 강박을 적절하게 컨트롤하려고 노력을 하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 많이 어떤 것들을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 강박에 동반된 우울감이나 불안은 사실 진료를 1년, 2년 이렇게 짧게 받아가지고는

-> 드라마틱하게 다 좋아져서 이제 해방됐어요! 이렇게 하기는 사실 어렵고

-> 아마 아주 장기간, 장기간 지금부터 10년, 20년이 지나도 어느 정도 증상을 가지고

-> 생활할 수도 있어요. 근데 그 증상 때문에 일상생활이 너무 방해될 정도는 아닌

-> 그 정도를 약간 맞춰주는 거죠.

- 꾸준히 약을 먹어도 괜찮은 건가요?

-> 괜찮아요. 그렇게 해야만 실제 변화가 있기도 하고요.

-> 예를 들면 성장기에 사람들은 키 큰 거 모르고 살잖아요.

-> 어느 순간 키를 딱 재면 키가 커져 있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에요.

-> 약을 계속 먹었을 때 딱 드라마틱하게 빵! 한 달 지나고도 달라지는 게 안 보일 수 있지만

-> 계속 누적이 되면서 약을 잘 챙겨 먹었더니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때보다 사실 이 정도까지

-> 좋아졌네.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 정신과 치료나 약은 하루 지나고 일주일 지나고 큰 차이가 안 나는데 일단 내가 포기하지 않고

-> 이 치료나 약을 먹으면서 자꾸 뭔가 변화가 생길 거라고 믿고, 

-> 내가 뭔가 이것도 시도해보려고 하고, 저것도 시도해보려고 하고, 이런 과정에서 

-> 약은 계속 밑바탕이 되면서 좋은 변화를 일으켜낼 수 있거든요.

-> 그러니까 조금 믿고 기간을 좀 더 길게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생각이 많은 나는 또 걱정을 한 보따리 들고 앉아 있었다.

치료라는 게 6개월, 1년, 누구도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는데

벌써 1년이나 지났다고 혼자 호들갑을 떨었다.

지금 선생님과 너무 잘 맞는 상담을 하고 있고,

때마다 약을 바꿔가며 맞는 약을 찾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 것도 아닌 활동들을 처음 시도해보기도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현재를 살아가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나는 잘하고 있다.

성장기 청소년이 언제 그렇게 훌쩍 키가 컸는지 모를 정도로

나도 언제 그렇게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 왔는지 모를 순간이 올 것이다.

이미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들도 있으니 너무 초조해하지 말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에 사라진 5년에 비하면 그 보다 많은 시간이 든다고 해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선생님을 믿고 가보겠다. 나를 믿고 가보겠다.


24회차. 벌써 일 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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