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진행 중인 사랑입니다.
첫 아이를 낳고 적막한 집안일의 유일한 친구는 라디오였다.
톡톡 튀는 이숙영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면 지루한 일상에도 생기가 돌았다. 그러다 우연히 집어 든 그녀의 저서, <애첩기질 본처기질>은 젊은 날의 나에게 맹랑하고도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권태기는 홀수로 온다던가.
살뜰했던 결혼생활도 홀수 해를 넘기니 고비가 찾아왔다. 뒤집어 놓은 양말 짝이 눈에 거슬리고 그가 미워지려던 찰나, 문득 그 책 제목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그의 애첩이 되어보는 거야!'
얄팍하고도 별난 생각이었다.
첩이라면 적어도 빨래를 산더미처럼 쌓아두진 않겠지. 시부모님 봉양이나 제사 음식으로부터도 조금은 자유롭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가 나를 '본처'라는 당연한 존재가 아닌, 잘 보여야 할 '연인'으로 대해주길 바라는 적극적인 투정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더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날부터 나는 본처의 자리를 잠시 접어두고 그의 애첩이 되기로 했다.
그가 퇴근하면 마치 잠깐 들렀다 본가로 돌아가야 하는 애틋한 임을 대하듯 정성을 다했다. 콧소리도 내고 말이다.
밑도 끝도 없는 나의 상황극에 남편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웃음을 보는 것이 나에겐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그런 유쾌한 장난기를 동력 삼아 30년이라는 긴 강을 건너왔다.
그러나 장난 같은 연극 끝에 마주한 현실에서 나는 결국 본처였다.
애첩의 화사한 미소 뒤에서 시부모님과 아이들, 그리고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묵묵히 받아내며 뿌리내린 든든한 아내였다.
오늘, 남편의 막역한 시청 후배들이 병문안을 다녀갔다.
오전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던 남편은 선후배들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을 내어 추억을 쏟아냈다.
한참을 웃고 떠들던 대화의 끝, 남편의 화두는 결국 '부부'였다.
"아파보니 결국 부인이더라. 곁에서 내 수족이 되어주는 사람 이 사람 밖에 없네. 부부가 함께 시간을 많이 갖게나.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마음 변치 말고, 관계를 귀하게 여기라는 말이네."
사고뭉치였다는 한 후배는 남편의 야윈 모습을 보며 숙연해졌다.
10년 넘게 쉬었던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했다는 고백도 들려주었다. 술, 담배도 안 하던 모범적인 형님이 병마와 싸우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남편이지만, 그의 삶을 보고 누군가가 주님께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다가왔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다니엘 12:3)
하나님은 어쩌면 남편을 통해 일하시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이들 부부라면, 이들의 삶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한 번쯤 고개를 돌려 봐주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늦은 오후 선후배분들이 돌아가고 그와 나는 깊은 숙면에 들었다.
주사도 약도 필요 없이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통증도 잊었다고 기분 좋아하더니, 그 편안한 기분으로 잠이 든 것이다.
모든 것이 감사했다.
귀한 분들이 다녀가신 일도, 유쾌했던 대화 자리도,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 죽 반 그릇을 다 비운 일도 감사했다.
많이 야윈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이전의 얼굴보다 더 익숙하고 편안하게 그를 마주한다.
여전히 그는 참 잘생겼고, 여전히 반할 만하다.
애첩이고 싶었던 철부지 아내는 이제 없다.
남편의 고통까지 기꺼이 나누어 짊어지는 본처의 이름으로, 오늘 하루 허락된 모든 것에 그저 감사하기로 했다.
오늘은 부디 통증 없이 푹 잠들기만을 바란다.
우리의 사랑은 영원을 향해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