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2월 16일, 나의 첫 숨과 그들의 마지막 숨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by 본비 은혜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지금도 문득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진다.

5남매 자식들을 키워내느라 부모님의 어깨는 늘 무거웠을 텐데, 내 기억 속의 풍경은 고단함보다는 사랑의 온기로 가득 차 있다.

신앙심이 깊으셨던 나의 어머니는 참 지혜로운 분이셨다.

한 푼이 아쉬운 살림이었지만, 주일 예배를 잘 드리고 온 날이면 5남매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셨다.

그 시절 최고의 별미였던 라면을 끓여주시거나, 동네 구판장에서만 살 수 있었던 '보름달 빵'이나 '초코파이'를 사주시는 식이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집중해서 들었는지 넌지시 물으며 우리의 태도를 살피셨다. 그 소박한 간식들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올바른 태도로 삶을 대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어머니만의 다정한 '훈련'이었다.

다정하고 화목했던 부모님 사이에도 가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를 때가 있었다.

바로 사업을 하셨던 아빠의 '깜짝 선물'이 등장하는 날이었다.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때도 있었으련만, 어느 날 아빠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거대한 포장의 화장품 풀 세트를 품에 안고 귀가하셨다.

어린 우리가 보기에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제품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의 나조차도 선뜻 지불하기 어려운 액수였을 것이다.

세상을 다 가진 듯 자랑스러운 표정의 아빠와, 속이 터져 발끈하는 엄마.

5남매의 학비와 생활비를 걱정하며 한 푼이라도 아끼려 애썼던 엄마에게 그 화장품은 아마 '사랑'인 동시에 '한숨'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보름달 빵'이 성실하고 지혜로운 일상의 사랑이었다면, 아빠의 '화장품 세트'는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잃지 않으려 했던 낭만적인 사랑이었다.

그 시절, 나는 그 상반된 두 사랑의 품 안에서 자랐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자식들에게는 '예배의 태도'를 가르치고, 서로에게는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 했던 부모님. 그 따뜻한 모순 덕분에 나는 오늘도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받는 존재인지 의심하지 않고 살아간다.


우리 집 아이들 표현대로라면 속옷이나 잠옷은 '누구에게 자랑도 못 할 옷'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가장 돈을 아껴야 하는 품목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 엄마의 생일날,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실크 잠옷을 선물로 사 오셨다.

손을 대면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가는 그 감촉에 우리 남매는 환호했다. 이 예쁜 잠옷을 입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변신할 엄마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엄마의 날카로운 눈총이었다.

"애들이 다섯인데 이런 데 돈을 쓰면 어떡하냐"는 엄마의 속 터지는 외침. 아빠의 낭만은 그렇게 엄마의 현실 앞에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다 보니, 마음 붙일 곳 없는 아빠의 하소연은 늘 내 몫이었다.

"네 엄마는 도대체 내 마음을 몰라준다"며 서운해하시던 아빠. 5남매 중 아빠와 가장 친밀했던 나는 그런 아빠의 '철없는 낭만'을 모르는 척 눈감아주며, 슬쩍 용돈을 타내는 영악한 딸이기도 했다.


아빠에게 나는 단순히 딸을 넘어,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는 유일한 이해자이자 비밀을 공유하는 동지였다.

생활력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강했던 엄마와, 낭만을 좇는 아빠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하지만 그 깊은 골을 메우는 건 의외로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유독 좋아하시던 '오징어땅콩' 과자 한 봉지면 충분했다.

아빠가 넌지시 건네는 과자 한 봉지에 엄마의 굳었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풀리곤 했다. 엄마도 아셨을 것이다. 아빠의 화장품 세트와 실크 잠옷이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고생하는 아내를 여자로 대우해주고 싶었던 아빠만의 서툰 고백이었다는 것을.

엄마의 억척스러움은 아빠의 낭만 덕분에 가끔 쉴 곳을 찾았고, 아빠의 위태로운 낭만은 엄마의 단단한 현실 덕분에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 수 있었다. 그 묘한 결속력이 우리 5남매를 키워낸 진짜 힘이었다.

엄마 아빠에게 나의 남자친구를 자연스럽게 소개하니, 아빠는 엄지 척을 해 주시고, 엄마는 내가 데이트 나갈 때 불러 세워서 한번 더 점검을 해주시곤 했다. 그런 응원 속에서 짧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이른 나이에 시작한 결혼 생활은 생각만큼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소한 일로 시작된 부부싸움 끝에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엔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여자가 서 있었다.

그 길로 싹 씻고 일어나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고 화장을 곱게 했다. 부은 눈으로 친구를 마주치기는 싫고, 그렇다고 초라하게 있고 싶지도 않았던 그때, 내가 선택한 도피처는 이천 미란다 호텔 1층 커피숍이었다. 동남아 가수들의 라이브 노래를 배경음악 삼아 커피를 마시며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는, 나름의 '대단한 용기'였다.

내가 우아하게(?) 마음을 달래는 동안, 남편은 좌불안석이 되어 친정아버지를 찾아갔다. 차마 싸웠다는 말은 못 하고 눈치만 보며 나를 찾던 남편의 모습에 아빠는 모든 상황을 짐작하셨으리라.

다음 날, 아빠는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은혜야. 너는 이제 정 씨 집안사람이다. 싸우지 말고 잘 살아라."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쪽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제 친정은 내가 돌아갈 곳이 아니구나' 싶은 서러움이 밀려오려는 찰나, 아빠는 묵직한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은 아니지만, 혹여 너를 때리거나 하면 두 번도 참지 말고 바로 집으로 와라. 그때는 아빠가 너를 평생 데리고 살마."

아빠는 나를 정 씨 집안사람이라 선언하며 책임감을 일깨워주시는 동시에, 만약의 순간에는 언제든 돌아올 곳이 있음을 알려주셨다. 출구를 열어둔 아빠의 그 사랑 덕분에, 역설적으로 나는 다시 남편의 손을 잡고 꿋꿋하게 살아갈 힘을 얻었다.

살면서 가장 외롭다고 느꼈던 순간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아빠의 이 한마디였다.


어린 시절 5남매를 위해 엄마가 사주셨던 보름달 빵의 달콤함과, 아빠가 건네주신 "평생 데리고 살마"라는 든든한 약속. 나는 그 사랑들을 먹고 자라 오늘을 산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이 고백은 내 생애 가장 찬란했던 축복이자, 가장 아픈 통증의 기록이기도 하다.


내가 서른 살이 되던 해, 추운 겨울날이었다.

남동생의 결혼식을 앞두고 설렘으로 가득해야 할 그 시기에 아빠는 급성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곁을 떠나셨다. 하필이면 나의 생일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했던 나의 응원자를 잃은 슬픔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남겨진 엄마의 시간은 더 가혹했다.

저녁마다 찾아간 친정집은 불빛 하나 없이 고요했다. 한참을 두드려야 불을 켜고 나오시던 엄마의 눈은 늘 퉁퉁 부어 있었다. "바람만 불어도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아 무섭다"던 엄마의 가녀린 어깨는 보는 것은 마음이 미어졌다.

아빠의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엄마는 내 가방 속에 몰래 봉투 하나를 넣어두셨다.

"은혜야 생일 축하해. 너 좋아하는 거 사 먹어라."

남편을 보낸 슬픈 기일인데도, 엄마는 그날이 당신 딸이 태어난 소중한 날임을 잊지 않으려 애쓰셨다. 그 마음이 너무 아리고 무거워 나는 더 이상 그날을 생일로 기념하지 않기로 했다.

음력 생일을 양력으로 바꿔 부모님과 나의 날을 분리했다. 그렇게 아빠와 나의 연결고리는 슬픔이 아닌, 각자의 온전한 기억으로 남겨졌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신 지 20년이 훨씬 지났다.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음력 12월 16일. 내가 첫 숨을 내뱉은 날과 아빠가 마지막 숨을 거둔 날이 같다니.

그리고 나를 세상 누구보다 지지해 주던 아빠와 남편이 차례로 마지막 숨을 거둔 날이다.

법 없이도 살 만큼 선했던 두 사람, 술과 담배 없이 정결한 삶을 지켜왔던 두 사람, 그리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두 남자는 신기하게도 똑같은 나이에, 같은 날에 천국으로 불려 갔다.

하나님은 나를 이 땅에 보내며, 나를 가장 사랑해 줄 두 사람을 붙여주셨고, 또 그 소명을 다한 날 나란히 그들을 데려가기로 약속하셨던 것일까.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자문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얼마나 더 잘 살아내야 하지?'

그들의 부재는 나를 외롭게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남기고 간 촘촘한 사랑의 기억들이 나를 단단하게 붙들고 있다. 아빠의 낭만과 엄마의 지혜, 그리고 남편의 든든한 응원까지.

나는 그 거대한 사랑을 먹고 자란 '사랑의 채무자'다.

이제 내 삶의 목적은 분명해졌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나는, 내게 주고 간 그 귀한 사랑의 온기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오늘을 살아낸다.

그것이 나의 첫 숨에 응답하고, 남겨진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목적이며, 그들의 마지막 숨을 기리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일 테니까.


사랑합니다. 아빠, 사랑해요. 여보.

나의 사무치는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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