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비 은혜
매년 돌아오는 봄이라 늘 같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올해의 봄은 전혀 다른 얼굴로 내게 왔다.
지난해 이맘때를 기억한다.
저녁 식사 후 집 근처에서 벚꽃축제를 하고 있어 편안한 차림으로 나선 네 식구의 밤마실에 피곤해하던 남편도, 멀리서 온 딸아이도 그 시간을 보석처럼 아끼며 환하게 웃었다. 휴대폰 갤러리 속에는 그날의 다정하고 눈부신 찰나가 여전히 생생하게 박혀 있다.
벚나무는 해마다 조금씩 몸집을 불리며 꽃잎의 풍성함을 달리해왔을 텐데, 나는 왜 매번 똑같은 봄이라 치부했을까. 매번 같지 않았고 매년 달랐는데,
올해의 봄은 내게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세상은 찬란한 봄이라 말하지만 내 마음은 전혀 찬란하지 않다. 공기는 따스한데 나는 하나도 따뜻하지 않다. 환희에 찬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김없이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봄이 이렇게 예뻤던가, 아니 봄이 이토록 슬펐던가.
더운 기운이 감도는 봄날, 흐르는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디지에토의 애절한 현악기 선율은 삶의 장대한 시나리오가 펼쳐지 듯 애절해, 따스한 살갗을 오히려 서늘하게 파고든다. 밖은 달아오르는데 내 마음은 식지 않는 겨울이다.
거리마다 축제에 오라며 손짓하는 알록달록한 현수막들이 어지럽다. 예전 같으면 어디로 떠날까 즐거운 고민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 어디로도 발을 떼고 싶지 않다. 유독 나만 이 계절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멈춰 서 있는 것만 같다.
눈부신 벚꽃이 누군가에게는 웃음을, 또 누군가에게는 눈물을 만드는 봄날이다. 세상의 속도와는 다른 결로 살고 있는 나를 잊지 않고 돌아봐 주는 사람들 덕분에, 어쩔 줄 몰라 헤매던 나의 봄날이 비로소 쉬엄쉬엄 넘어가기 시작한다.
어제는 수원에서 친구 둘이 불쑥 찾아왔다. 짧은 점심시간이라도 좋으니 얼굴을 보자는 그 마음이 고마워 넉넉히 외출을 달고 나섰다. 고즈넉한 한옥 마루에 앉아 한낮의 햇살을 받으며 나눈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들. 요즘 유행한다는 MZ 세대의 셀카법을 따라 해 보겠다고 낑낑대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결과물을 마주하고는 깔깔거리며 실컷 웃었다. '친구는 이래서 좋은 거구나' 새삼 마음이 몽글해졌다.
잠깐의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자리에는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캐나다에서 잠시 한국에 오신 권사님이 직장 앞 카페에서 기다린다는 소식이었다. 2시간이나 지난 뒤에야 확인한 메시지 앞에서의 당혹감이란. 권사님은 급히 나가느라 엉망으로 널브러진 내 책상 위에 정성껏 준비한 원두커피를 가만히 올려두고 가셨다.
이어지는 회의와 식사 일정 때문에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어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오후.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저녁 식사를 하던 오리구이집에서 우연히 고개를 들었을 때, 바로 옆 테이블에 권사님 내외분이 계신 것이 아닌가!
"이런 걸 두고 인연이라고 하지요. 거부할 수 없는 인연요."
깜짝 놀란 우리 사이로 따뜻한 인사가 오갔다. 비록 느긋하게 차 한잔 나누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이렇게라도 얼굴을 뵙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른다. 만나야 할 사람은 결국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법인가 보다.
내 마음은 여전히 서늘한 그늘에 머물러 있지만, 나를 찾아와 웃음을 주고 간 친구들과 기적처럼 마주친 권사님의 다정함이 차가운 살갗을 데워준다. 혼자만 멈춰 선 줄 알았는데, 봄은 사람의 마음을 빌려 내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비로소 '나'로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몇 년 전 서울행 버스 맨 앞자리에서 창밖을 보다 우연히 발견했던 그 예쁜 벚꽃길. 매년 봄마다 잊고 지내다 다른 계절 드라이브 중에서야 "다음 봄엔 꼭 오자" 다짐만 했던 그 길을, 기어코 올해는 잊지 않고 찾아갔다.
길은 "왜 이제야 왔느냐" 묻지 않고 가만히 나를 기다려주었다. 사회적 수식어들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며 또각또각 발걸음을 옮겨본다.
살아온 날만큼 또 살아가야 할 나는, 이제 어떤 길을 어떤 속도로 걸어야 할까.
짧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길을, 마치 이것이 본래 내 속도인 양 느릿느릿 걸어보았다.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선 벚나무들은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나무도 뾰족한 송전탑도 포근히 감싸 안아 돋보이게 만드는 저 노을처럼, 나 또한 주변 이들을 따스하게 안아주는 사람이기를 바라본다.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의 끝에도 저토록 아름다운 노을이 머물기를 소망하며.
돌이켜보면 바쁘게 사는 것만이 최선이고 중요한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내려놓고 보니 그리 대단치 않은 것들에 매달리느라, 정작 훨씬 귀한 것들을 놓치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노을 지는 이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지나온 길에 대한 후회보다 중요한 건, 지금 내 발 밑의 흙을 밟으며 천천히 숨 쉬는 이 '느린 속도'라는 것을. 비록 찬란하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한 봄이었으나, 노을빛 머금은 벚꽃길은 말없이 나를 다독이며 다시 걸어갈 힘을 건네주고 있었다.
오늘 저녁,
도마 위에 동치미 무를 썰다 말고 주방 창 너머를 멍하니 바라본다.
일을 멈추고 멍하니 생각에 잠길 때면 자꾸만 질문이 꼬리를 문다.
왜 그이를 놓쳤을까. 나의 믿음이 부족했던 걸까. 100%의 순수한 믿음이 아니었을까.
상황은 이미 종료되었음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자문과 고민들.
문득 큰아이가 중학생 때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다.
"엄마, 똑같이 기도하는데 왜 어떤 환자는 살고 어떤 환자는 죽어요? 하나님은 차별하시나요?"
저녁을 준비하던 나는 아이에게 금의 함량을 비유로 답했었다.
"순금처럼 100%의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생명을 가르기도 하지 않을까?"라고.
그날의 확신에 찬 대답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가슴에 박힌다. 나의 기도는 겉치레였을까. 내 믿음의 분량이 정금 같지 않아 그이를 놓친 것일까.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 애쓰다 보면 생각은 늘 지독한 자책의 굴레에 머물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세상에는 사람의 계산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찬란한 벚꽃길을 걷고 돌아와 다시 일상의 부엌에 서서, 나는 내 마음속에 내리는 비를 가만히 바라본다.
비록 밖은 꽃비가 내리는 봄날이지만, 내 안의 비는 그치지 않아도 괜찮다.
억지로 눈물을 닦아내며 '강한 믿음'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으려 한다.
이 비가 내 마음의 먼지를 씻어내고 언젠가 맑은 하늘을 보여줄 때까지, 나는 그저 이 슬픔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갈 뿐이다.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을지라도, 내 사랑의 순도만은 여전히 100%였음을 이제는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도 꽃잎되어 내 마음에 그리움이 콕 내려앉았다.
사랑해 봄! (봄을 사랑하는 것인지, 과거형이 되어버린 고백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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