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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머무는 곳, 토레스 델 파이네

by 장성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 3월 9일 일요일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향해 북쪽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모두 파타고니아 지역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은 만년설이 덮인 화강암 봉우리와 빙하가 만든 에메랄드빛 호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중심의 세 봉우리와 주변 산들을 크게 돌며 호수들과 토레스 델 파이네의 풍광을 감상할 예정이다.


버스를 달려 도착한 첫 번째 전망대, 드넓은 평원 위로 아침해가 나직이 드리우면서 메마른 나무와 누런 덤불에 생기가 돌고 군데군데 구름 그늘이 어둑한 밤의 흔적을 남긴다. 만년설이 흘려보낸 맑은 물은 평원 위를 느릿하게 흐르고, 그 위로 아침 햇살이 퍼지기 시작한다. 평원에는 건물 몇 개가 흩어져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물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 게 하회마을과 비슷하다. 다만 드넓은 평야와 그 배경에 설산이 위엄 있게 우뚝 서 있으니 색다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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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136.JPG 하회마을처럼 물이 감도는 이곳에는 호텔과 군용 시설 등이 있다



설산 봉우리는 온통 구름에 가려져 있다. 삐죽삐죽 솟아오른 바위산 꼭대기는 눈이 쌓인 채 짙은 구름과 한 덩어리가 되어 아련한 풍경을 그려내니 전설 속 장면 같다. 구름은 산이 불러 모으기라도 한 듯 점점 더 짙어져 봉우리를 반이나 가려버린다. 구름 가득한 저 산 깊은 골 어딘가에 안데스 산맥을 오가는 신선 한 둘쯤은 있지 않을까. 설산의 웅장한 자태와 신비한 분위기를 보면 신선이 꽤 여럿 있을 것도 같다.


IMG_7137-2.JPG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산들은 신비주의를 고수하려는 듯 늘 구름에 가려져 있다.



다음 전망대를 향해 가려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친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 비바람 속에 햇살이 언뜻 비취더니 무지개가 뜬다. 왼쪽 들판에서 오른쪽 숲 속까지 팔을 한껏 펼쳐 그린 커다란 반원이다. 우리 버스는 무지개 문을 향해 달린다. 빨리 도착해서 무지개를 찍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는 느리고 그사이 무지개는 슬며시 제 갈길을 간다.

IMG_7148.JPG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무지개



그레이 호수

토레스 델 파이네를 보기 위해 두 번째로 간 곳은 그레이 호수다. 입구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오솔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거대한 빙하호인 그레이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 건너편에는 눈 쌓인 봉우리가 보인다. 산꼭대기에 구름이 살짝 걸쳐지기는 했으나 묵직한 모습 대부분을 볼 수 있었다.

호숫가에는 100여 미터정도 되는 모래톱에 자잘한 돌이 깔려있어 디딜 때마다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저 멀리 산자락 아래에는 떠내려온 빙하 덩어리가 보이고 파르스름한 호수에는 잔물결이 일어난다.

IMG_7193 복사.jpg 호수가에는 자잘한 자갈이 깔려있다.


IMG_7179.JPG 산자락아래 파란 빙하조각이 떠가는 게 보인다.



뻬오헤 호수

세 번째 전망대는 뻬오헤 호수가였는데 바위로 이루어진 산봉우리를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하필이면 우리가 도착했을 때 구름이 짙어졌다. 흰 구름이 몰려와 설산을 휘감으니 눈과 구름과 산이 한 덩어리로 어우러져 어디가 산인지 어디가 구름인지 알 수 없다. 거대한 수석을 옮겨 놓은 듯한 바위 봉우리들이 짙은 구름 속에 서있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 같기도 하고, 구름을 휘휘 저으며 신선이 날아오르는 장면이 보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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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253-1.JPG 구름이 순식간에 짙어져 산봉우리를 가린다.




살토 그란데 폭포

IMG_7263.JPG 살토 그란데 폭포. 너무 멀리 있어서 작아 보이나 실제는 꽤 큰 폭포라고 한다.


마지막 전망대에 내렸을 때는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강하고 단호한 파타고니아의 바람은 남국의 힘을 과시라도 하듯이 세차게 불어대니 몸이 날려가 중심을 잡고 걷기 힘든 정도였다. 서둘러 버스로 피신했다. 이곳에서도 토레스 델 파이네의 일부 봉우리는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토레스 델 파이네 봉우리들은 늘 구름에 가려있어 모든 봉우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도 산 주변을 빙빙 돌아보았지만 이쪽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이면 그 옆 세 개는 구름과 안개에 가려 뿌옇다. 버스를 몰아 건너편에 닿으면 이쪽 세 봉우리가 보이는 대신 먼저 본 두 개는 구름에 가려진다.

그 신비한 산의 계곡으로 들어가 구름 속을 휘저으며 걸어보면 좋으련만 그럴 기회는 갖지 못했다. 그래서 아쉽게도 토레스 델 파이네를 지키는 신선들을 만날 기회도 얻지 못했다.


제목 없음_파노라마-6.jpg 토레스 델 파이네 일부는 늘 구름 속에 숨어 있다.




오늘은 아르헨티나로 넘어가는 날이다. 국경선이라고는 허허벌판에 차량용 차단봉 하나가 전부다.

칠레 출국 시 PDI 제출, 아르헨티나 입국은 간단히 여권에 도장만 찍어주고 통과.


IMG_7284.JPG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선.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서면 풍경이 바뀐다. 주변 산들이 점차 사라지고 누렇게 물든 구릉지와 평야지대가 아득하게 펼쳐져있다. 유럽의 자연과 비슷하다.


엘칼라파테로 와서 시내를 통과한 후 외곽의 호텔에 도착했다. 호수 건너편으로 엘 칼라파테 시내가 보석처럼 반짝이며 호숫가에 빛을 드리우고 있다.


IMG_7290-1.jpg 숙소에서 본 엘 칼라파테 시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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