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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서사가 아니라 치열한 생이었다

삼락

by 규린종희

기온이 어제보다 1도 올랐다는 일기예보다. 몸 밖에서 느끼는 1도 차이란 체감이 모호한 온도다. 그러나 몸안에서의 1도는 생사의 문제를 일으키는 시작이다. 장기의 온도가 1도 오르면 몸 안의 염증이 사라지고 암세포도 죽는다고 했다. 겉의 온도보다 속의 온도가 중요한 까닭이겠다.

겉에 속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 말의 온도다. 발화자로부터 벗어난 말의 온도는 말이 가진 뉘앙스다. 뉘앙스란 감정의 표현이다. 예술의 정의를 감정의 표현이라 주장하는 표현론을 빌려오자면 말은 언어 예술이다. 예술은 내 가슴에 풍부한 미적 상상력을 넣어준다. 당신의 말이 내 가슴에 일렁이는 파도가 되기도 하고 눈밭을 처음으로 걸어가는 발자국을 새길지도 모른다. 새소리에 귀를 열고 개미들의 행렬에 방해되지 않는 여유를 주는 것도 어쩌면 미적 상상력이 열어주는 선물이다.

그러나 순기능에 비해 역기능의 파고는 주초를 흔들어대기도 한다. 판세를 뒤집어버리는 기세로 삽시간에 연대를 와해시키는 것이다. 뉘앙스에 담긴 온도는 체감의 공감이라는 새로운 연대로 진지를 구축한다. 뉘앙스에 대한 공감 해석으로 연대하는 집단지성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문제는 집단과 집단사이의 분열이다.

어제보다 올랐다는 1도는 감각기관으로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채지는 못한다. 그러나 심미안의 1도란 생각이 달라지는 온도다. 생각이 달라지면 언어가 달라진다. 언어가 바뀌면 세계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나아가 한 사람의 생이 달라지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실은 1도의 자각이자 자유의지인 것이다.

아침 5시 30분 여지없이 의식이 깨고 이어 육체가 일어섰다. 밤을 건너오는 동안 재생되었으니 죽은 것은 어제였고 생은 지금이다. 죽은 것이 남긴 아름다운 서사란 뜨거운 생의 자국이다. 벚꽃은 생의 자국이 밀어올리는 나무의 온도아닌가.


낙동강 삼락둔치에 벚꽃이 만개직전이란 소식이다.삼락 벚꽃길엔 三樂이 부활하고 있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웃었다. 三樂이라. 칭칭 감고 건너온 밤을 밀어내며 나온 뿔소라 같은 글자 樂을 거울보듯 본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 노자를 생각하며 삼락을 생각한다. 나와 네가 일락과 이락이며 너와 내가 같이 걷는 길이 삼락이다. 즐거우면 좋아하고 좋아하면 노래가 절로 나오니 樂은 하나가 품은 셋이다. 너와 내가 열어가는 오늘이니 황홀할 수밖에...

기온이 어제보다 올랐다. 물통하나 메고 삼락으로 가야겠다. 공감의 온도로 볶아대는 깨소금 냄새가 벚나무를 박차고 나오는 그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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