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엔 엄청 큰 푸른 달이 온다 해서 무척이나 설레었습니다. 혹 월하대작을 찾아 나선 길에 돌아올 길을 잃을까 싶었던가 비가 대신 왔습니다. 콘크리트에 부러지는 비를 보면서 각처에서 보내오는 달그림으로도 좋았습니다.
붓 끝에 달려 나온 흐린 문장을 봅니다. 글자의 흐릿함이란 캄캄함보다는 답답함입니다. 노화 현상이라는 말과 함께 덧붙여진 노안이라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편안해졌습니다. 거절할 수 없는 선물이 나이라고 했던가요. 예기치 못한 일 앞에서 침 한 번 꼴딱 삼킬 수 있는 여유도 나이 듦이 주는 보상입니다.
본다는 것이 단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여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지극히 감각적인 일입니다. 더욱이 감각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는 왜곡된 상을 진리로 인식하는 실수를 하고 말지요. 무엇보다 감각에 의한 대상의 인식은 결국 편견을 낳게 됩니다. 대상이 가진 본질에 대한 고민은 하지도 못한 채 그저 형상에 머물수록 사유도 단순한 언어의 나열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나이 듦이란, 자신의 경계를 인식하는 것이겠지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며 살아왔던 이십 대, 현실적 존재이면서 끝없이 이상을 추구했던 삼십 대, 삶의 미로 속에 방정식 같은 매듭을 풀어 가며 지나온 삼십 대에 비해 장년(長年)은 지난 시간에 대하여 이제 정리를 해야 할 시기입니다. 거창한 새로운 뭔가를 계획하고 실행하기보다는 지나온 시간을 갈무리하고 자신에 대한 사유를 깊이 해야 할 때이겠지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가슴 아파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 아니 더 이상 조바심이 생기지 않는 시기. 이즈음은 안다는 것의 개념도 확장되어 즉시적인 답이 아니라 한 번쯤 물러서서 답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도권 교육을 통해서 배운 것이 절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과 사유의 결과 생기는 품격이 곧 그 사람의 첫인상이 됩니다. 하여 이 시기의 가슴은 무엇이든 담백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여백을 품습니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상황 앞에서 허둥거리기보다는 의연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잠시 흔들림은 있을지언정 기울어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잠시 기울어짐은 있을지언정 넘어져서는 안 되기에 스스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그 순간 경계에 선 사람이 됩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상황 속에 비로소 자신에 대한 진지한 삶의 물음을 던지는 것입니다. 때로 막연한 불안함으로, 때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내포하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며 고뇌하고 자각하는 것이 장년의 흔들림입니다. 하여 장년의 흔들림은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균열입니다.
그러나 장년의 흔들림은 상실이 아니라 발견에 있습니다. 의식의 미세한 균열이 마침내 경쟁 속에 놓아 버린 잃어버린 감성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비로소 소박한 자유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것 또한 나이 듦이 주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이런 삶의 자각이 있기에 장년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재구성하는 시도를 시작합니다. 지난 삶의 자각을 통해서 새로운 가능성의 길을 갑니다. 깊이가 있되 무겁지 않으며 화려하지 않지만 수수한 아름다움이, 흔들리되 균형을 잃지 않는 중심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생각만으로 설렌 달빛처럼... 그대 내게 언제나 달빛입니다. 9월엔 달빛처럼 만나러 가겠습니다. 우리, 영화처럼 걸어요.
(설희. <영화의 바다로>. 종이. 아크릴+색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