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 다녀갔습니다. 오랜만의 조우라 기색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간 불편함은 없었는가, 나를 바라보는 그의 낯빛은 평온한가. 간간히 읽고 있는 책의 행간을 바람처럼 툭 보내주던 벗이라 바다를 보며 맥주를 삼키는 그의 울림이 마치 책의 표지처럼 펼쳐졌다가 문장의 여음처럼 다가왔습니다.
나는 그의 고요를 좋아합니다. 그의 고요함 속에는 바람에 일렁이는 밀밭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밀밭으로 풀어내는 문장은 비와 비 사이를 채운 소리처럼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비와 비 사이만큼의 거리에서 그는 삶을 사유하고 명상합니다. 말과 말 사이, 휴지(休止)가 있는 그의 말을 좋아합니다.
섬이 아름다운 것은 그만큼의 거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의 거리에 담긴 출렁거림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것은 섬이 아니라 거기에 닿는 물결입니다. 눈에 보이는 곳에 있으나 길은 멀어 물결은 제 몸을 흔들어 파도를 일으키지요. 숲이 아름다운 것은 섬으로 서있는 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지 끝에 닿은 잎의 출렁거림이 이어져 숲을 이루니 마치 섬과 섬 사이를 잇는 물길처럼 숲도 바다입니다. 때때로 벗의 걸음은 나무이기도 합니다. 나무에 깃든 바람이기도 합니다. 계절이 어디쯤 와 있는지, 또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그가 있어 나는 달력을 보지 않고도 시절을 짐작합니다.
숲을 명상하듯 물을 명상합니다. 물을 명상하듯 그의 언어를 명상합니다. 숲이 품은 이야기와 물이 걸어온 길에 귀 기울입니다. 숲이었다가 나무가 되기도 하고, 바다의 언어가 되는 벗은 내게 스승입니다. 그는 십수 년 만에 다시 얻는 책 읽기의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폭설에 고립된 골짜기에서 시간을 잊으며 시간을 채우는 것처럼 그를 통해 나는 책 읽기에 고립되어보려고 합니다. 행간을 걸으며 한 시대 결을 살아낸 지성의 길에 이정표를 세우며 이리저리 흩어진 사유의 조각을 시접 해볼 요량입니다.
하얀 낮달도 속으론 붉듯이 벗을 보는 내 마음도 붉습니다. 제 몸을 갈아 향기를 내는 커피처럼, 제 몸을 태워 깊이를 더해가는 커피의 풍미처럼 나는 벗이 나눠주는 지식의 향연을 좋아합니다. 태생적으로 동양학에 익숙한 나는 서양학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균형 잡힌 사유를 하지 못하고 기우뚱한 균형을 잡으려 애만 쓰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와 나 사이 물길이 생기면서 나는 비로소 양팔저울을 흉내 낼 수 있었습니다.
추분 지난 바람엔 나락 익는 냄새가 납니다. 머지않아 추운 계절이 오겠지요. 내려야 할 것과 품어야 할 것을 생각해야 할 시간. 가끔은 복잡한 감정의 경계에서 몸부림칠 시간. 밖으로 향한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야 할 시간이 그림자를 접으며 내려오고 있습니다. 때로 침묵으로 때로 무성한 잎으로 키워낸 열매도 한 움큼 바람에 맡겨야 하는 가을엔 존재를 위한 소멸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물드는 게 어찌 나뭇잎뿐인가요. 사람은 사람에게 물들어 마침내 그 사람이 되지요.
꽃을 피우려는 의지가 풍경을 만들 듯, 담쟁이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보는 지금도 언젠가는 그리움이 되겠지요. 가불 한 추억을 풍경처럼 마시는 가을 새벽, 문득 깨어 그 순간에 고인 고요를 만납니다. 그 순간에 고인 언어를 붙잡고 나의 언어를 보냅니다. 프란시스 잠, 도연명, 라이너마리아릴케를 불렀던 백석처럼 나는 그를 부릅니다. 섬과 섬 사이 파도처럼... 추분 지난 열엿새 붉은 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