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쇼팽
독락당으로 향하던 길을 돌려 통도사로 접어든 건 행운이었습니다. 화엄산림법회 중인 경내는 저마다의 삶을 품은 사람들이 화두를 찾아 물고기처럼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예기치 못했던 순간, 뜻밖에 다가온 기쁨을 행운이라 한다면 그날 통도사의 한낮이 그랬습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설법전 연주회가 있었으니까요. 절집에서 만난 쇼팽이 더욱 그랬습니다.
말씀이 물처럼 흐르는 說法殿에서 나는 전신을 휘감아 도는 묘한 환상 속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아침 호수에 오르는 안개 같았습니다. 건반 위를 걷는 구도자, 거장의 움직임에 나는 발가락에 힘을 주고 허리를 세웠다가 다시 힘 빼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날, 설법전에서의 만났던 황홀함과 여운은 몇 해가 지나도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있습니다.
거장의 연주를 기다리는 겹겹 사람들 가운데 그가 건네주는 따스함은 봄볕이었습니다. 다른 방향을 보고 있어도 그 온기는 내게 있었으며 겨울 초입 마른 머리카락을 스쳤습니다. 그럴 때마다 빠르게 뛰던 피돌기에 나는 애기단풍처럼 물들고 있었을 겁니다. 설법전 서까래를 타는 피아노 선율에 사그랑 사그랑 스치는 온기가 더해 무아지경과 운우지정의 경계에서 나는 줄타기를 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다음곡이 연주되는 사이에서야 비로소 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마감일이 다가오는 글이 쉬이 풀리지 않을 때 쇼팽을 즐겨 들었습니다. 청정한 새벽 호수, 고요를 흔드는 수생생물들의 은밀한 움직임 같은 음악이 내 감성을 깨우기 때문입니다. 눈을 뜬 감성은 미끄러지듯 언어를 흔들고 말과 말 사이를 부지런히 시침질하다 낮게 여리게 빠르게 내달렸습니다. 때로 여울물이었다가 큰 바위 아래를 비집고 들어 굽이치고, 때로 얕은 물가 물풀들 사이에 가쁜 숨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을 몇 번이고 만나고 오가는 동안 어느새 글은 쌓여갔습니다. 내게 쇼팽은 늘 그랬습니다. 신명 혹은 엑스터시 같은 열락을 걷게 했습니다.
다음 연주를 기다리는 그 순간, 꽁꽁 싸매어둔 나의 페르소나가 불쑥 보였습니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아니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관계성이란 자칫 가면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에게 가면은 가면으로 인식되지 못하지요. 무대를 벗어난 배우처럼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은 사치라 생각했기에 고독이라는 말로 포장하면서 자기 최면을 걸었습니다. 절대고독이 주는 희열로 포장한 외로움이 문지기처럼 버티고 있었습니다. 아니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절대고독이란 수문장으로 빗장을 걸어 스스로 침잠했는지도 모릅니다. 내 안에 내가 많지만 그 페르소나들이 眞我는 아님에도 관계성 안에서 개별 페르소나는 타인으로 하여금 나의 眞我로 인식되었나 봅니다.
통도사의 쇼팽은 舌法으로 나를 휘감았습니다. 꽃이 피기 직전의 떨림이라고 할까요. 겉잎이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하며, 속잎의 결이 씨줄 날줄로 교직 되듯 움직이고 꽃을 받친 대궁은 활처럼 휘어지며 낭창낭창 흔들렸습니다. 전각사이로 번져가는 쇼팽이 막 사랑에 눈뜬 사람의 긴 목으로 보였습니다. 설법전 아래 물소리에 젖은 쇼팽의 발라드는 그윽한 언어의 골짜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골짜기에서 탄생된 언어는 비익조가 되어 날아오르고 연리지가 되겠지요.
그 겨울 쇼팽은 탄탄한 지성을 바탕으로 부드러운 틈을 만들어내는 문장으로 내게 왔습니다. 아! 건반을 걷듯 문장을 걷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먼 훗날, 그의 기억 속에 각인되는 언어이고 싶습니다. 삶과 문학은 둘이 아니듯... 사랑과 예술도 둘이 아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