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춤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춤'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주위 사람들이 손을 저었습니다. 춤과 연상된 이미지가 부정적인 게 더 많다 보니 으레 '춤' 하면 '춤바람'을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춤은 움직이는 것이니 바람이 날 수밖에요...
중동 건설현장에 한참 인력을 내보내던 70년대... 집안의 당숙도 그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딸 넷의 가장으로 가난한 살림에 숨통이라도 틔워볼 요량으로 그는 뜨거운 모래바람이 부는 건설현장으로 날아갔고 꼬박꼬박 돈을 보내왔지요. 물론 그 돈으로 딸들과 고운 그의 아내는 비교적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단칸방에서 전셋집으로... 그리고 도시의 마당 있는 집을 샀으니 땀 흘린 결실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일은 엉뚱한 데서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전부 학교에 들어가고 빈 시간이 생긴 아내가 춤을 배우러 다녔고 어느 날 딸 넷을 두고 집까지 팔아서 한 남자와 떠나버린 겁니다. 이름하여 춤바람.... 그 후로 집안에서 '춤'이라는 말은 금기어가 되었습니다. 춤은 '악'의 대명사였고, 가정파괴였으며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하는 것으로 치부되었지요. 그랬으니 춤을 배우고 싶다는 내 말에 1차적으로 급격하게 반대를 한 사람들이 가까운 이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틈만 나면 춤 이야기를 했습니다. 귀에 이골이 나도록... 춤을 배워야지... 춤을 배워야지... 한때는 비디오테이프로 춤과 관련된 영화를 필름이 늘어지도록 보면서 발동작을 따라 해 보기도 했지만 타고난 몸치라 , 리듬을 탈출 모르는 나는 늘 두어 박자를 놓치고 말았지요.
룸바를 배우고 싶어요.
피아졸라 100주년 공연을 보던 날, 나는 장문의 글을 띄웠습니다. 내가 춤을 배우고 싶은 이유를... 크로아티아 붉은 지붕이 내려다보는 광장,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에 맞추어, 깊게 파인 흑단 같은 옷을 입고 관능적인 힐을 신은 원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춤을 추고 싶다고... 더 늦기 전에... 그래도 근육이 마음먹은 대로 이완을 해 줄 수 있는 오십 중반이니...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지금 배우려 한다고... 이런 맘이 통했던지, 지인들이 춤 학원을 찾아 사전 정보를 알려주고.. 함께 등록하여 지원군을 자처해 주었습니다. 춤, 첫 발을 딛은 지 2년 지나고 있습니다.
예순다섯 J 선생님은 정년퇴직 후 <아내의 주방>으로 재취업에 성공했습니다. 근무시간이 끝나는 해거름이면 최대주주인 아내와 손을 잡고 댄스 학원으로 옵니다. 생각보다 몸이 늦어 스텝이 엇박자인 아내와 '투엔 쓰리엔 포 원' 구령을 붙여가며 춤을 추는 두 분의 모습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색연필 그림처럼 언제나 따뜻합니다. ‘영숙 씨, 우리 영숙 씨... “ 근 사십 년을 낡은 앨범에 묻어둔 아내의 이름을 다시 부르기 시작한 J 선생님을 보면서 나의 육십 대를 상상해 봅니다. 늙지 않는 감성으로 즐거운 노년을 살아가리라는 두 분의 땀냄새가 조말론 블랙베리처럼 보입니다.
셀 위 댄스? 세월이 흘러도 그대에게 나, 맨살에 감겨드는 미풍 같은 언어이고 싶습니다. 그대, 그때도 나의 파트너가 되어주실 거지요? 또각또각 발소리를 끌며 다가가는 내 손을 여전히 잡아줄 거지요?
(설희. 셀 위 댄스?. 종이에 아크릴 +색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