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언어는 비늘처럼 감성을 일으키고 어떤 언어는 물오른 어린 가지 봉곳한 눈처럼 옵니다. 또 어떤 언어는 해거름 산란하는 빛으로 흔들리고 어떤 언어는 윤슬처럼 떠 있습니다. 언어는 그 언어를 품은 사람의 온기와 정감을 담아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겨울과 봄 틈새, 정월 보름 통영으로 달마중 갑니다. 물 위를 찰방찰방 걸어오는 달빛을 상상하며 가는 마음은 이미 보름달입니다. 낮의 끄트머리를 잡은 해와 밤의 초입에 선 달이 양팔저울처럼 떠 있습니다. 나는 저울의 가운데 길을 꼿꼿하게 세운 등뼈처럼 통영으로 갑니다. 멀고 가까움이 서로 기대어 융기된 땅이, 산이라는 이름으로 길을 안아줍니다.
땅의 중첩된 주름이 열어가는 풍경은 흡사 일월오봉도를 연상케 합니다. 그런 중첩 위에 교교히 떠 있는 해와 달, 달과 해가 주는 그만큼의 거리를 올려다볼 때는 어떤 언어로도 그 오묘함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뒤차를 먼저 보내는 기차의 느린 마음으로 풍경을 봅니다. 천천히 가는 만큼 풍경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물 빠진 개펄에서 기어 나오는 무른 속살이 한 점 모노크롬으로 안깁니다. 소리를 내어 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 그렁그렁한 눈빛의 말이 뜨거울 때가 있습니다. 귀 기울여야 비로소 보이는 말, 가만히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들리는 말이 있지요. 그것은 느린 마음일 때라야 다가오는 언어입니다.
오래 못 본 사람이 새벽꿈에 설핏 다녀간 날이었습니다. 푸른 새벽에 깨어, 먼지 앉은 책을 열었습니다. 책장을 접을 때마다 오버랩된 오래된 얼굴 하나가 흩어졌다 모였다 또 흩어졌습니다. 마른 물길이 남겨둔 흔적 같은 길의 주름을 보듯 천천히 책장을 넘겼습니다. 삶은 냉철한 듯해도 광활한 고독을 품은 그 속은 황홀하다는 것을 흩어지는 문장이 말합니다.
풍경의 뒷모습을 보며 가는 여행처럼, 문장의 끝말은 또 다른 풍경을 열어줍니다. 대상을 밖에 둔 생각과 내면에 질문을 던지는 사유 사이, 마르지 않는 물길로 흐르고 싶습니다. 사이란 주름입니다. 풍경과 풍경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생각과 사유 사이에 꿈틀거리는 주름을 접으며 우리는 날마다 성장하는가 봅니다.
주름은 경계선입니다. 경계가 만들어내는 깊이를 보는 순간 중년의 내가 보였습니다. 중년, 살아온 길을 갈무리하고 다독여 조붓하게 걸어야 하는 시절입니다. 하여 중년에 만나는 모든 것은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 순간이 때로 생애 최고의 순간이며 또한 마지막입니다. 설령 그것이 오래도록 붙잡고 싶은 희열일지라도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순간이 영원으로 회귀되고 있음을 중년은 읽습니다.
노을이 누운 바다에 달빛을 포개어 보았습니다. 햇빛과 달빛이 만나 일렁이는 바다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볼처럼 붉은 점을 찍습니다. 그 순간 슈만의 머리카락을 빠져나오는 라인강바람 같은 문장이 온통 나를 흔들었습니다. 사랑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예술 안에서 가난하더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고는 슈만을 선택한 클라라 슈만이 생각났습니다.
정월 보름. 포실하게 틈을 만들며 일어서는 봄빛처럼. 오래된 정인이 처음으로 "사랑해" 속삭이듯. 어린 가지 꽃눈 맺히듯 파고드는 보름달빛이 찰방찰방 물 위를 걸어옵니다. 패인 물이랑 마다 달빛이 고입니다.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그만큼씩 닳아버릴까 싶어 보는 것도 아까운 달밤입니다. 그대, 그 달밤의 달빛으로 내게 찰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