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개꿈?
뭔가 분위기가 싸~했다.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오전 8시 15분의 사무실. 전날 매출이 그닥 좋지 않아서 애초에 잡았던 계획과의 GAP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무님 호출이다. 보통 9시 전에는 부르시는 법이 없는데.. 웬일인가 싶었다.
부르셨어요, 전무님
어, 거기 좀 앉아봐요,
네,
음.. 이거 뭐 나로서도 좀 난처한 일인데..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시나)
뭐 결론부터 말하면, 박팀장이 이번에 면팀장이 되었어요,
네?
요 몇 개월 회사 상황이 좋지 않았잖아, 그래서…
아니, 그래도 제가 이 조직에서 20년을…
알지, 알어, 박팀장 열심히 한 거 내가 모를까, 그런데 뭐 알다시피 인사는 명령이니,..
…
그래서 말인데, 혹시 가고 싶은 부서가 있거나, 아니면..
아뇨, 저는 이거 받아들일 수 없고요, 제가 직접 사장님 만나서,
어허, 이 사람 왜 이래 이거, 낸들 이게 좋을 줄 알어? 당신 없으면 일단 내가 피곤한데..
그래도 전문님,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요, 제가 그간 회사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래, 안다고 박팀장! 그래서 말인데.. 박팀장 후임은 그 김 과장이..
…. 네? 김 과장이요? 아니 진짜 대체 나한테 왜 다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 결국은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오늘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애써서 뭔가 다시 준비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상황. 그때 뭔가가 번쩍거렸다.
이런. 꿈인가…
아내가 뒤척이더니,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묻는다.
안 좋은 꿈 꿨어?
어… 아.. 아냐
새벽 4시 50분.., 뭔가 일어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다시 자기에는 좀 그런 시간… 그냥 일어나기로 한다. 습관적으로 양치를 하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뭘 해야 하나..
조직장은 지금의 전무님이 전무로 승진하면서 몇 년째 공석이었고, 이래저래 소문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 자리에 내가 오를 수 있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없다고 해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럼 어디 이직이라도 해서, 임원의 커리어를 한번 쌓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다듬어서 전문성을 만들 수 있을지 막연한 상황이다. 유통업이라는 게 좋은 브랜드를 좋은 가격에 소싱하고, 판매하고 볼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주요한 기능일 텐데, 코로나 이후, 오프라인 유통은 그전과는 완전히 바뀐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으로 인해서, 뭔가 새롭게 기능들이 정의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이제 소비재는 온라인 구매가 훨씬 편하고 저렴하기 때문이다.
아직 애들도 어리고,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받은 대출이자도 여전한 상황인데 말이다.
출근하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그냥 버티는 게 답인 건가. 젠장.
8시 15분.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거 뭔가 묘한 기시감이.
전무님의 호출이다. ;
박팀장, 곧 발령이 날 거 같아요, 이거 나도 급히 연락을 받은 거라..
(뭐지… 이거)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진 TF장으로 가게 되는 것 같은데, 이 커머스 쪽 프로젝트예요,
이커머스요?
어, 뭐 우리도 뭔가 준비를 해봐야겠단 생각에 기획실에서 제안을 한 모양이더라고요,
근데 제가.. 갑자기 왜 발령이..
글쎄 뭐 인사에서도 특별히 얘길 안 해주네, 박팀장이 이커머스쪽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아.. 참.. 이거
뭐, 인사라는 게 다 그런 거지, 다음 주에 발령이 뜰 거니깐, 지금 하고 있는 것 정리 좀 하고,
지금 팀은 그럼 어떻게 되나요?
아, 팀은 아마 옆에 지원팀과 통합될 거고, 거기서 세 명 정도 빼서 TF인력 한번 꾸려봅시다,
꿈에서 처럼 면팀장은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이지만, 하필 이커머스라니. 20년 차에.. 핸드폰으로 뭐 들여다보면서, 물건 사는 것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참.
어이도 없고, 당황스러움에 멍 한 상태인데, 아내의 문자가 왔다.
‘도윤이 담임선생님이 이번주에 상담 좀 했으면 좋겠다고 연락 왔어요,’
뭔가가 감당할 수 없게 휘몰아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