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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멀똑 Jun 23. 2024

코칭과 수다는 어떻게 다른가

ep.3

화요일. 대략 업무들을 마무리하고, 부랴부랴 약속에 나갔다.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해버린 약속이니 뭐 어쩌겠나. 뭔가 골치 아픈 자료들을 캐비닛으로 밀어 넣으며 김 과장에게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문자로 업무지시를 했다. 대꾸하는 것도 이제 슬슬 지키는 것 같다.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드는 일.


선배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60대 중순이 가까운 나이의 작은 체구의 여성이었다.


선배, 저 왔어요,

어 어서 와, 여기 앉아. 야 내가 이 분한테 너 소개해 드린다고 고생 겁나 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네네 어서 오세요, 호호호,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박팀장님

너 코칭이라고 들어봤냐?

뭐 운동 코치 같은 거요?

이런 무식하기는.. 너는 회사에서 코칭 같은 거 안 받냐?

그럴 겨를이 있나요, 뭐 하루하루 일 쳐내기 바쁜데,

야, 나 저번에 솔루션 하나 개발해서 영업하다가 쫄딱 망해서 엄청 고생했는데, 우리 코치님 덕분에 살았다

.. 에?

여튼 코치님 엄청 바쁘신 분이니깐, 시간 좀 내서 코칭받아봐,

아니 그게 뭔데..

뭐든 좋은 거니깐, 잔말 말고, 나는 갈 거니깐, 밥은 나랑 따로 먹자, 나 갈게~



선배를 그렇게 가버리고, 나는 그냥 20년 정도 젊은 호호 할머니 같은 분과 함께 엄청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인상은 제법 좋으신 편이고, 옷 입는 센스가 동년배보다는 훨씬 세련된 모습. 생각보다 나이가 더 많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호호, 팀장님 식사는 하셨어요?

아 네.. 대충 먹고 왔어요,

아 그러셨군요.

근데, 뭐 제가 아직 코칭받고 이럴 여유가 없어서요.. 정말 죄송한데,

아이고 그러시군요, 그럼 어떻게 하시면 좋으실까요?

저는 다 괜찮으니 말씀해 주세요, 억지로 시간 내시는 게 쉽지 않으실 거 같아요,

아 그래도 오늘은 이렇게 나왔으니, 잠시만 말씀을 좀 나눠볼까요?

오 그러시겠어요?


뭐 내키진 않지만 뭐 어쩌겠나, 선배 부탁으로 일단 나오긴 했으니..


그럼, 몇 시까지 시간이 괜찮으시겠어요?

.. 지금이 8시니깐, 8시 반 정도까지 괜찮을 것 같아요, 제가 집에 일이 또 좀 있어서요

네, 좋습니다. 그럼 30분 정도 시간이 있네요.

근데, 선배한테는 어떻게 얘길 듣고 오셨어요?

호호호, 그냥 저에게 밥을 사시겠다고 해서, 아까 여섯 시 반께 만나서 같이 식사하다가, 아는 후배가 있는데 코칭을 좀 해줄 수 있겠냐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아 그래요? 선배랑은 아신 지 오래되셨나요?

아뇨, 저도 어느 분 소개로 선배님과 코칭을 해오고 있었고요, 바로 지난주에 5번째 코칭이 끝났더랬죠.


아내에게 톡이 왔다.


’오늘도 늦어?‘

’어, 근데 많이 늦진 않을 듯‘


아이고 많이 바쁘시군요, 불편하시면 그만 일어나셔도 됩니다.


뭔가 웃는 모습에서 그래도 얘기나 한번 들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냥 뭐 속는 셈 치고.


아.. 아녜요, 잠시 집에서 연락이 와서요,

아이고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안 했네요 호호호 저는 금선아라고 합니다, 은행에서 한 30년 근무했었고요.

아 네 저는, 박선경입니다. 회사 다닌 지는 20년 정도 되고요, 유통회사에 근무하고 있어요.

그러시군요.. 요즘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세요?

뭐.. 그냥저냥 회사에 다니고 있죠. 40대 직장인이 그렇듯 반복적인 일상에 항상 화가 나있는 아내에.. 하 참..

아내 얘기 하시면서 웃으셨네요, 아내는 어떤 분이세요?

그냥 뭐 평범하죠. 전에는 안그랬는데, 요즘은 왜 이리 화가 많아졌는지.. 저는 똑같은 것 같은데.


30분이 넘었는데도 말을 멈추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팀장님, 혹시… 시간이 더 필요하실까요?

앗.. 제가 말이 너무 많았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호호호 말씀하시기 어려운 부분까지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까 말씀을 미처 못 드렸는데, 정식으로 계약하기 전이라도 저와의 대화는 코치협회 윤리규정을 준수해서 비밀이 보장이 되니깐, 안심하시고 얘기해주셔도 좋아요.


아 네.


돌아가셔서, 한번 생각해 보시고, 코칭이 필요하겠다 생각이 드시면, 연락 주세요. 정식으로 계약 맺고 코칭 진행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코치님.


뭐 생각나는 건 크게 없는데, 곱씹어보니, 이런 얘기를 누구에게 한 번도 이렇게 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뭔가 해결된 건 없는데, 약간 시원한 느낌.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정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느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한번 생각해 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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