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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법

AI,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확장의 도구로

by 김멀똑

솔직히 고백하건대, 처음 ‘인공지능’이니 ‘챗GPT’니 하는 것들이 뉴스 도배를 시작했을 때, 나의 반응은 철저한 ‘외면’이었다. 그건 마치 옆 부서에서 새로 도입한 복잡한 결재 시스템 같았다. 배우기는 귀찮고, 안 쓰자니 도태될 것 같고, 막상 들여다보면 이게 뭔가 싶은 그런 찜찜함.


더 솔직해지자면, 두려웠던 것 같다.


20년간 내가 갈고닦아온 ‘보고서 작성’이라는 장인 정신(?)이, 고작 명령어 몇 줄에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나의 야근과, 나의 주말 출근과, 나의 흰머리가 부정당하는 기분이랄까.


글쎄, 아직은 시기상조 아니겠어? 기계가 인간의 통찰을 어떻게 따라올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졸업’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 오만한 태도를 버려야만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제 내게는 ‘손발’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 안에서는 내가 ‘머리’를 쓰면, 김 대리가 자료를 찾고, 이 사원이 PPT 장표를 다듬었다.


하지만 광야로 나가는 순간, 나는 머리이자 손이자 발이어야 한다. 자료 조사부터 제안서 작성, 영문 이메일 검토까지 혼자 다 해내야 하는데, 노안 온 눈과 삐걱거리는 허리로 그 ‘막노동’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 물리적으로 너무 힘에 부친다. ;


그래서 쪽팔림을 무릅쓰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그 녀석(AI)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보았다. 마치 신입사원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듯.


“화장품 시장의 동남아 진출 전략에 대해, PEST 분석 기법으로 정리해 줘.”


몇 초나 지났을까. 모니터에 쏟아지는 텍스트를 보며 나는 묘한 전율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완벽하진 않았다. 깊이가 얕고, 뻔한 소리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초안(Draft)’으로서는 훌륭했다.

내가 꼬박 반나절을 구글링 하며 헤맸을 정보들이 순식간에 구조화되어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것은 어쩌면 경쟁자가 아니라, 내가 데리고 나갈 ‘비서’가 될 수 있겠구나.


4050 세대인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질문하는 능력’과 ‘판별하는 눈’이다.


신입사원들은 AI가 뱉어낸 답이 맞는지 틀린 지, 이게 비즈니스 매너에 맞는 표현인지 모를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짬밥’이 있으니까. “야,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다시 써.” “이 부분은 좀 더 감성적으로 접근해야 먹혀. 톤 앤 매너 바꿔봐.”


이른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거창한 기술은, 사실 우리 부장님들이 매일 해오던 업무 지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게 시키는 그 노련함.


어쩌면 AI는 우리 같은 중년에게 더 필요한 도구일지도 모른다. 떨어지는 체력과 기억력을 보완해 주고, 우리가 가진 ‘경험’이라는 원석을 더 빠르고 세련되게 가공해 주는 도구.


늙은 말은 더 이상 젊은 말처럼 빨리 달릴 수 없다. 하지만 날개를 달아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기꺼이 이 기술을 내 등에 달 생각이다. 그리고 회사 밖이라는 절벽에서 뛰어내릴 때, 추락하는 대신 비상하는 도구로 써먹을 작정이다.


여전히 기계적인 말투는 정이 안 가지만.. 뭐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월급 안 줘도 되는 유능한 비서가 생긴 셈 치면 그만인 것을.


그러니 한번, 제대로 도구를 써보는 것으로, ;

유료 결제를 하려니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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