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와 오빠의 한 끗 차이
졸업 준비물의 1순위가 '돈'이고, 2순위가 '콘텐츠(기술)'라면,
0순위는 단연코 몸뚱이다.
20대 때는 밤새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출근해도 점심 해장이면 부활했지만, 지금은 밤 10시에 라면 하나만 먹고 자도 다음 날 아침 얼굴이 보름달이 되고, 오후 3시까지 속이 부대낀다. 야근이라도 하루 할라치면, 그 여파가 3일은 간다. 슬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하드웨어는 노후화되었다. 배터리 효율은 70% 밑으로 떨어졌고, CPU는 가끔 버벅대며, 외관 곳곳에는 스크래치가 났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곧 이 노후화된 장비를 들고 '야생'으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라는 거대한 보조 배터리가 없는 곳에서, 오로지 내장 배터리만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 그래서 나는 요즘 ‘졸업 논문’을 쓰는 심정으로 내 몸을 들여다보고 있다.
1. 생존을 위한 근육, 그리고 고독한 달리기
나는 운동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살기 위해’ 운동한다. 우락부락한 보디빌더가 되겠다는 허황된 꿈은 버린 지 오래다. 그저 내 두 다리로 걷고, 내 짐을 내가 들 수 있는 ‘다부진 몸’이면 족하다.
그래서 주 2~3회, 억지로 몸을 일으켜 30분씩 달리기를 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느껴지는 그 비릿한 피 맛이, “아, 나 아직 살아있구나” 하는 감각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얹어서 챙기는 건,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게 관리해야 하는 이상지질혈증 약과 빵, 과자 같은 정제 탄수화물을 줄이려는 눈물겨운 사투다.
졸업 후, 내가 1인 기업이 되든 프리랜서가 되든, 아프면 그날로 ‘폐업’이다. 월차도 병가도 없는 사장님에게 체력은 곧 자본금이다. 그러니 스쿼트 한 개가 100원짜리 적금이고, 달리기 1km가 만기 보험이라 생각하며 뛴다.
2. 등산복은 산에서만 입자 (패션의 재정의)
중년 남자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적은 ‘편안함’이다. 그 편안함의 끝판왕이 바로 ‘일상복이 된 등산복’이다. 기능성 쿨링 티셔츠에, 신축성 좋은 등산 바지. 물론 편하다. 세상 편하다. 하지만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나를 증명해 줄 명함이 사라진다면? 그때 남들이 나를 판단하는 1차 근거는 나의 ‘옷차림’과 ‘때깔’이 된다.
비싼 명품을 휘두르자는 게 아니다. 적어도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게, 내 몸에 잘 맞는 면바지와 다림질 잘 된 셔츠 한 장 정도는 갖춰 입을 줄 아는 센스. 배가 좀 나왔다고 펑퍼짐한 옷으로 가리려 하지 말고, 오히려 조금 더 긴장감을 주는 옷을 입어 스스로를 단속하는 것.
나는 이것을 ‘최소한의 예의’라고 부르고 싶다.
나를 만나러 온 사람에 대한 예의이자, 이제 홀로 서기를 시작한 나 자신에 대한 예의. ‘아저씨’와 ‘오빠’의 차이는, 뱃살의 유무가 아니라 그 뱃살을 어떤 옷으로, 어떤 태도로 감싸고 있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3. 얼굴이 곧 명함이다 (이미지 관리)
거울을 본다.
중력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볼살과, 점점 넓어지는 이마의 영토, 그리고 꼬불꼬불 제멋대로인 눈썹.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고단하고 찌든 아저씨’가 되어버린다.
성형수술을 할 순 없지만, ‘깔끔함’은 유지할 수 있다. 콧털 정리기를 사고, 로션을 꼼꼼히 바르고, 미용실에 가서 “그냥 짧게 쳐주세요” 대신 “옆머리는 다운펌으로 눌러주시고, 윗머리는 볼륨 좀 살려주세요”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해 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표정’.
회사 밖에서 만난 사람들은 귀신같이 안다. 이 사람이 쫓겨나서 어쩔 수 없이 나온 사람인지, 아니면 자신감 있게 새로운 도전을 하러 나온 사람인지. 그 힌트는 얼굴에 쓰여 있다. 미간의 주름보다는 눈가의 주름이 더 많은 사람, 입꼬리가 중력을 거스르고 살짝 올라가 있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비즈니스 기회도, 사람도 모이는 법이다.
우아한 졸업이란, 결국
‘나’라는 브랜드를 세상에 내놓는 런칭 쇼와 같다.
그 쇼케이스 무대에 츄리닝 바람에 까치집 진 머리로 올라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달리기를 하고, 샤워 후 로션을 바르며 거울 속의 남자에게 말을 건다.
“김 씨, 좀 늙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쓸만하네. 관리 잘해서 비싸게 팔려보자고.”
나의 몸은 이제 회사의 부속품이 아니라, 나만의 비즈니스를 담아낼 소중한 그릇이니까.
깨지지 않게,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자.
그래도 등산복은... 정말 편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