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는 지금 어떤 거지?
졸업시험은 이 사람이 졸업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겠다. 보통의 우리나라 교육기관은 그렇게 고되지 않으니, 졸업시험을 못 봐서 졸업을 못하는 경우는 크게 없다 할 수 있겠다. 물론 해외의 어느 대학들은 그것이 매우 어려워서, 입학은 쉬운데 졸업을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들 한다. 주로 명문대학들은.
회사에서도 그런 것들이 있으면 어떨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만.. 보통의 회사는 반대로 할 거다. 어떤 시험을 치렀을 때 그 누군가가 엄청나게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면, 어떨까? 기를 써서라도 회사에 남게 하려고 온갖 보상들을 제안할 거다. 그게 회사를 위해 좋은 것일 테니. 하지만 반대가 된다면 어떨까? 어떻게 해서든 회사에서 내보내려고 할 거다. 그게 또한 회사를 위해 좋은 일이 될 테니. 그래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사람들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회사를 나가려 할 때 이른바 전별금 같은 것들을 받기가 수월한 이유일 거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
몇 달 전 함께 일하던 부장 한분이 퇴직의사를 밝혔다. 젊은 시절 해외에서도 몇 년 근무를 했었고, 역량과 성과면에서 우수함을 인정받고 있었던 분이다. 물론 이후로 뭔가 잘 풀리지 않아서, 더 이상 승진은 하지 못했고, 다양한 시도들을 해봤지만, 상황들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인사팀과 퇴직금 이외에 전별금에 대한 얘기가 잘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설렁설렁하면서 평가도 좀 못 받고 이랬었어야 했나 봐요, 쳇 ㅎ"
자조 섞인 말속에 뼈가 담긴 듯했다. 하지만, 그분 입장에서는 좋은 평가와 성과를 받아오면서 쌓인 자신만의 역량이 있었을 거다. 졸업수상은 못해서 상금은 없지만, 졸업시험은 통과한 셈이었다. 결국 퇴사 후 몇 달 뒤 어느 기업 임원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역시, 그동안 본인이 해놓은 것들이 있으니, 좋은 조건으로 입사를 했겠구나 싶었다. 물론 기업의 임원은 계약직이라, 근무기간이 다소 불안정한 상황이니, 주어진 시간 내에 성과를 입증해 내지 못하면 바로 잘려 나갈 것이다. 아직까지는 잘려나갔다는 소릴 듣진 못했으니, 여전히 잘하고 있는 것이겠거니 싶었다. 부디 오래오래 건승하시길!
그럼 나는… 어떨까?
뭔가 좀 어중간 한 상황이란 생각이 든다. 무언가 남들보다 특별한 성과를 내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완전히 바닥을 긁어가며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멀쩡해 보이는데 가끔 보면 좀 특이한 데가 있는 거 같다, 엉뚱한 데가 좀 있는 것 같다’와 같은 소릴 들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실제로, 몇 해 전 리더십 진단을 받았는데, ‘어떤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리더십’ 유형이란 결과를 받았다. 인사팀에 연락해서, 내가 어떤 역량들을 쌓아가며 리더십을 키워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그냥 맘 가는 대로 자유롭게 강의들을 선택해 가며 학습하시라, 는 피드백을 받았다. ㅋ 주변 동기들은 폭소가 터졌고, 나는 뭐 어떤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강점이 있겠거니 싶었다.
어쩌면 유연함?
다양한 부서를 옮겨 다니며 업무를 해오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여러 경험에 대한 인사이트는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럼 이걸 어떻게 졸업시험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 뭐라도 하면 다 잘 될까? 어떤 것에 강점을 두고, 나는 ㅇㅇㅇ 전문가라고 스스로를 정의해야 할까? 그걸 찾는 것들이 필요하겠다. 이걸 기반으로 뭔가 테스트를 해봐도 좋겠다 싶다. 지인의 추천으로 ‘강점진단’이란 워크숍을 다음 달에 신청을 하긴 했는데. 그 안에서 뭔가 나만의 positionality가 발견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 돈은 어떨까?
대략 20년을 근무했으니, 년에 1천만 원꼴로, 2억 정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간의 씀씀이를 보니, 월에 최소 5백 정도는 쓰고 있는 것 같다. 두 아이들의 학비까지도 고려해 본다면, 빡빡하게 4년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추가 소득이 없이도. 물론 퇴직금 외에도 모아놓은 돈이 좀 있으니, 보수적으로 잡아도 2년 정도는 가능해 보인다. 음. 이렇게 보니 뭐 약간의 자신감이 생겨난다. 역시 막연하게 두려워하기보다는 실질적인 계산을 좀 해보면 그런 불안감을 조금은 벗어 버릴 순 있을 것 같다. 물론 앞으로 은퇴 후에 얼마가 필요한지 조금 더 정밀하게 돈계산을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는 한다.
현재 내 마음은...?
뭐 매해 인사철이 되면 임원도 아닌데 덩달아 불안해하는 이유는 팀장이었다가 일반 담당으로 내려가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쪽팔림, 민망함 뭐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어떻게 다를 수 있을지 마음이 제대로 서지 않아서 일거다. 물론 주변에 한창 잘 나가던 팀장이었다가 지금은 일반 담당으로 후배가 팀장으로 있는 팀에서 조용히(?) 일을 하고 있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존심이 돈을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니,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일에만 집중해서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그런대로 지낼만하다는 것이다. 가장이라는 위치가 순간의 감정에 '욱'해서 계획 없이 직장을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반증인 것이다. 나 역시도, 몇 번이고 이런 상황들을 시뮬레이션하고는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떤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고 그 시간들을 지내게 될지..
그런데 또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럼 아주 오래도록 내내 이 회사에 다니는 것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음. '행복'이란 단어를 꺼내는 것에 대한 약간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뭐 40대 아재도 '행복'을 고려해 볼 수는 있는 것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