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달〉 4회

200km의 순정

by 김성훈


고3 마지막 여름이 지나갔다.


체육관 뒤편에서 도시락이 바닥에 쏟아지고,

셋이 나란히 교무실로 불려 갔던 날 이후,

셋은 자연스럽게 붙어 다녔다.


그해 수능이 끝난 밤,

PC방에서 밤을 새웠고,


성인이 되던 밤엔

술집으로 흘러갔다.


첫 잔은 생각보다 썼고,

웃음은 생각보다 빨리 취했다.


겨울에는 당구장에 박혀

큐대가 손에 익을 때까지

공을 굴렸다.


끝나면 편의점 앞에 앉아

손을 녹이며 컵라면을 나눠 먹었다.


무환은 늘 도시락을 싸 왔고,

대진은 늘 말을 먼저 꺼냈고,

진용은

그 사이에서 듣는 쪽이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군대 가기 한 달 전이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는 말이었다.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고,

선택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그때

대진이 흘리듯 말했다.


“걔, 해수욕장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한대.”


진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다 바로 앞 이래.

이름도 그대로래.”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심장이

조금 세게 내려앉았다.


확신은 아니었지만

충분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말은 남아 있었다.


바다.

카페.

그 애.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볼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 날,

진용은 자전거를 꺼냈다.


아버지가 쓰던

오래된 자전거였다.

체인은 조금 늘어져 있었고,

기어는 한 박자씩 늦었다.


그래도

굴러는 갔다.


“자전거로 가자.”


말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대진이

눈을 크게 떴다.


“미쳤냐.”


그러더니

곧 웃었다.


“근데… 좋다.”


무환은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켰다.


확대했다가

줄였다.


“200km.”


담담하게 말했다.


200km.


집에서 학교까지

백 번은 넘게 오갈 거리였다.


“하루 반이면 간다.

밤에 안 자면.”


잠깐 멈춘 뒤,

무환이 덧붙였다.


“나도… 여기 좀 떠나고 싶었어.”


말은 짧았지만

가볍지 않았다.


군대 가면

자전거도,

도시락도,

이런 공기도

당분간 없을 거라는 걸

셋 다 알고 있었다.


대진이

자전거 안장을 쳤다.


“야, 그래도 바다잖아.

운명의 여자가 모래알만큼 널려 있겠지.”


진용은 웃지 않았다.

말리지도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이 여행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졌다.



출발 얘기는

이상할 만큼 빨리 정해졌다.


헬멧.

물병.

간식.


무환이

편의점 봉투를 꺼냈다.


“공금.”


각자 주머니에서 꺼낸 돈이

봉투 안에서 한 번 더 접혔다.


봉투 안에는

접힌 지폐 몇 장이 전부였다.


“카드 같은 건 없잖아.

우리 이걸로만 움직이자.”


“잃어버리면?”

대진이 물었다.


“그럼 굶는 거지.”


아무도 웃지 않았다.


진용은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던 상자를 꺼냈다.


1년 동안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열면

끝날 것 같았다.


먼지를 털어내고,

조심스럽게 가방 안쪽에 넣었다.


목걸이였다.


혹시 부딪힐까 봐

양말로 한 번 더 감쌌다.



출발하는 날 아침,

해는 유난히 일찍 떴다.


집 앞 골목에

자전거 세 대가 섰다.


대진은

벌써 땀이 나 있었다.


“야, 진짜 가는 거지?”


무환은

기어를 한 번 더 눌렀다.


“지금 안 가면

영영 못 가.”


진용은

페달 위에 발을 올렸다.


잠깐 멈췄다가

다시 내렸다.


심장이 빨랐다.


이번엔

이름을 피하지 않았다.


그 애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매미 소리가

아침 공기를 찢었다.


진용은

다시 발을 올렸다.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는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다른 두 대도

같이 움직였다.


그렇게

길 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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