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km의 순정
고3 마지막 여름이 지나갔다.
체육관 뒤편에서 도시락이 바닥에 쏟아지고,
셋이 나란히 교무실로 불려 갔던 날 이후,
셋은 자연스럽게 붙어 다녔다.
그해 수능이 끝난 밤,
PC방에서 밤을 새웠고,
성인이 되던 밤엔
술집으로 흘러갔다.
첫 잔은 생각보다 썼고,
웃음은 생각보다 빨리 취했다.
겨울에는 당구장에 박혀
큐대가 손에 익을 때까지
공을 굴렸다.
끝나면 편의점 앞에 앉아
손을 녹이며 컵라면을 나눠 먹었다.
무환은 늘 도시락을 싸 왔고,
대진은 늘 말을 먼저 꺼냈고,
진용은
그 사이에서 듣는 쪽이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군대 가기 한 달 전이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는 말이었다.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고,
선택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그때
대진이 흘리듯 말했다.
“걔, 해수욕장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한대.”
진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다 바로 앞 이래.
이름도 그대로래.”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심장이
조금 세게 내려앉았다.
확신은 아니었지만
충분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말은 남아 있었다.
바다.
카페.
그 애.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볼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다음 날,
진용은 자전거를 꺼냈다.
아버지가 쓰던
오래된 자전거였다.
체인은 조금 늘어져 있었고,
기어는 한 박자씩 늦었다.
그래도
굴러는 갔다.
“자전거로 가자.”
말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대진이
눈을 크게 떴다.
“미쳤냐.”
그러더니
곧 웃었다.
“근데… 좋다.”
무환은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켰다.
확대했다가
줄였다.
“200km.”
담담하게 말했다.
200km.
집에서 학교까지
백 번은 넘게 오갈 거리였다.
“하루 반이면 간다.
밤에 안 자면.”
잠깐 멈춘 뒤,
무환이 덧붙였다.
“나도… 여기 좀 떠나고 싶었어.”
말은 짧았지만
가볍지 않았다.
군대 가면
자전거도,
도시락도,
이런 공기도
당분간 없을 거라는 걸
셋 다 알고 있었다.
대진이
자전거 안장을 쳤다.
“야, 그래도 바다잖아.
운명의 여자가 모래알만큼 널려 있겠지.”
진용은 웃지 않았다.
말리지도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이 여행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졌다.
⸻
출발 얘기는
이상할 만큼 빨리 정해졌다.
헬멧.
물병.
간식.
무환이
편의점 봉투를 꺼냈다.
“공금.”
각자 주머니에서 꺼낸 돈이
봉투 안에서 한 번 더 접혔다.
봉투 안에는
접힌 지폐 몇 장이 전부였다.
“카드 같은 건 없잖아.
우리 이걸로만 움직이자.”
“잃어버리면?”
대진이 물었다.
“그럼 굶는 거지.”
아무도 웃지 않았다.
진용은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던 상자를 꺼냈다.
1년 동안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열면
끝날 것 같았다.
먼지를 털어내고,
조심스럽게 가방 안쪽에 넣었다.
목걸이였다.
혹시 부딪힐까 봐
양말로 한 번 더 감쌌다.
⸻
출발하는 날 아침,
해는 유난히 일찍 떴다.
집 앞 골목에
자전거 세 대가 섰다.
대진은
벌써 땀이 나 있었다.
“야, 진짜 가는 거지?”
무환은
기어를 한 번 더 눌렀다.
“지금 안 가면
영영 못 가.”
진용은
페달 위에 발을 올렸다.
잠깐 멈췄다가
다시 내렸다.
심장이 빨랐다.
이번엔
이름을 피하지 않았다.
그 애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매미 소리가
아침 공기를 찢었다.
진용은
다시 발을 올렸다.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는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다른 두 대도
같이 움직였다.
그렇게
길 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