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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Oct 06. 2022

어쩌면 귀가

3. 병상일기 - 내가 더는 계절을 세지 않는 이유

한동안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반강제적이었던 부천살이에 그럭저럭 적응하면서도 하루하루 온몸  어딘가를 돌아다니며 터지는 새로운 통증, 감각 없는 살에 쓸린 상처가 궤양이 될 때까지 오히려 손을 대었고 응급실에도 실려 갔었고 감정조절에 실패해 느닷없이 울기도 취한 듯 수많은 말들을 하던 날들을 불규칙적으로 반복했다. 예측 안 되는 삶의 나날들을 정면으로 맞이하는 건 정말 엿 같았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살고 싶지도 않다가 심한 날은 옥상 정원 끝에서 아스팔트 바닥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곤 했다. 그러다 곧 떨어진 나를 치울 이야말로 얼마나 엿 같을까 싶은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에 딱히 내가 없는 날이 대다수인 날이었다. 분명 몸은 조금씩 나아져 간다는데 어째서 나는 더 힘들었다. 한의사  선생님은 나보고 그게 바로 화병이라고 했다. 덕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침도 맞고 약은 약대로 늘어나 끼니마다 한 움큼의 약을 한꺼번에 삼키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고 더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요동쳤다. 예전같이 억울한 마음에 누구라도 붙잡고 얘기해야만 했던 거에 비하면 무기력한 날들이었다. 간간이 즐거웠다 싶어도 그때뿐. 주위에서는 다들 글을 쓰라고 권했다. 이젠  1년이나 지나가니까 그만큼 했으면 되었다고 순응하라고 했다. 나는 아직 1년밖에 안 지난 거라고 소리쳤다. 다들 나를 겁내기 시작했다. 위아래로 내 몸을 흘겨보면서. 나는 아무도 없는 황무지 한가운데 홀로 버려진 느낌을 자주 받고는  했다. 더는 손 내밀 기력조차 없어 누군가의 손길을 건네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꼭 그런 맘이 들 때면 아무도 그래 주지 못했다. 그때부터였나 한때 잠만보였던 내가 다시 불면증에 시달렸다. 4시간이 지나면 칼같이 눈이  떠졌다. 피곤한데 눈만 상쾌한 이율배반적인 몸 상태에 나는 그저 등만 돌리고 있을 뿐 아무것도 못 했다. 드디어 그나마 나았던 곳들도 맛이 가기 시작했구나. 뭐 하나 쉽게 풀리는 게 없구나. 


우울함이 길어지자 그마저 짜증 나는 일들의 하나가 되어 검은 아우라를 뿜어냈다. 그때 엄마는 내가 눈빛부터 달라져서 이 지랄맞은 딸내미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감정이 밀물처럼 쓸려왔다 썰물처럼 빠지는 것만 같았다. 속상함인지 억울함인지 모를 미지의 감정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매번 의식도 채 하지 못한 사이에 먼저 울컥 화를 내다 울고 말았다. 머리로는 나도 그렇게까지 화내고 울 마음은 없었다고 말해봐도 어쩔 도리 없이 가까이 있는 이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우리는 서로 상처를 받는다. 사랑보다 더 무서운 애증이다. 나는 이런 감정 소모를 혐오하지만 이내 곧잘 반복하곤 했다.


일 년 만에 다시 검사를 받은 날이었다. 아무렇지 않았다가 긴장했다 불안했다가 실망하고 체념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여느 날처럼 졸린  눈으로 잠은 못 자고 냉장고에 있는 온갖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어 그 포만감으로 겨우 잠들고 있다. 아침이 밝아오면 여지없이 나타난 지난밤의  흔적이 너무 미웠다. 마냥 밥만 축내기도, 한 달에 보통 100만 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부모님께 손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부모님은 앞으로 내가 먹고 살길을 하나라도 늘리기 위해 여러 신청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나는 끌려다니다 감정이 폭발해 울기를 반복하는 유약한 캐릭터였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어떻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별반 다르지 않은 그 날이 그날인 삶을 살고 있다.


지금도  글쓰기는 죽어도 귀찮고 며칠 전만 해도 통증에 기력이 빠져 반나절을 누워있었다. 이마저도 안 하면 미칠지도 몰라 아직 할 수 있는 울고 짜증 내는 날들을 진자운동처럼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 방편으로 더는 계절을 세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굳이 그 진자 운동을 곱씹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이 책 하나로 충분하다. 그저 앞으로 과거를 뒤돌아 보고 싶을 땐  이 문장만 되뇌기로.


"날은 좋고 아픈 이들은 많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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