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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Oct 10. 2022

어쩌면 귀가

6. 어쩌면 귀가

강릉과 부천을 오고 간 지도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두 도시가 거리상 서로 가깝지만은 않지만, 강릉과 부천에 도착할 때마다 전부 '드디어 집에 왔구나'라는 안도감부터 드는 걸  보면 기분이 묘하면서도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부천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 도시인 줄도 몰랐는데 역시 인생은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구나 싶다. 그동안 강릉집은 태풍으로 다시 지은 뒤로는 처음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벽지도 장판도 가구도 너무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롭게 바꿨다. 수술 뒤로 한여름에도 곧잘 추위를 느끼는 나를 위해 단열재를 아낌없이 넣어 훨씬 따뜻해지기도 했다. 내 방 창문에는 그동안 내 로망이었던 하얀색 레이스 커튼을 달았다. 나만의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비밀스러운 달콤한 맛 같다. 아직 강릉은 비교적 코로나의 영향이 덜한 곳이라 이곳에선 친한 이들과 카페에서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예전보다 더 동네 산책도 자주 하곤 한다. 때때로 차를 타고 바다에 찾아가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기기도 한다. 또한 감자옹심이나 문어 같은 해산물처럼 강릉에서 제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들은 식욕을 돋운다. 무엇보다 내가 아픈 뒤로 츤데레에서 딸바보로 전향한 아빠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와 달리 부천은 젊은 사람들의 북적거림을 느끼기에 좋다. 아무 때나 남 눈치를 안 보고 밖을 나서면 보이는 내 갈 길을 가겠다며 뾱뾱 소리를 내는 신발을 신고선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기들, 킥보드를 타는 꼬마들,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의 모습을 한발 뒤로 물러나 관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곤 한다.  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이곤 하는데 전동 휠체어의 접근성이 좋기 때문인지 도시 곳곳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지나가는 말로 어떤 나라나 도시의 복지 수준을 가늠하는 제일 쉬운 척도는 그곳에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오고 가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한다. 


이전에도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프고 난 뒤로 장애인 화장실 등 장애인 복지에 대해 좀 더 관심이 생겼는데 부천은 강릉과 비교해 확연히 자연스레 오가는 지체장애인의 수가 많은 편이다. 예전에 일본 여행을 갔을 때도 비슷한 인상을 받고선  ‘내가 사는 곳에서도 이런 모습이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다.’  부러워하곤 했었는데 부천 지역의 지리적 특성 말고도 자체 인구수라든지 병원의 수준 말고도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분명히 이러한 점은 부천이 가진 좋은 순기능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은 부담 없이 지하철만 타면 갈 수 있는 서울 구경을 나가기도 한다. 강릉에서 서울을 편도로 한 번 갈 수 있는 금액이면 부천에서는 서울을 10번은 너끈히 다녀올 수 있다.  병원 외래를 다녀오고도 남는 충분한 돈으로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을지로나 서촌, 동대문 등을 다녀오곤 한다. 오랜만에 강릉에서 친해진 타지 친구들을 전보다 훨씬 쉽게 만나기도 한다. 집 앞 마트에 나가면 바로 내게 어울리는 옷을 싼값에 살 수 있고 내 워너비 캔모아 빙수를 언제나 먹으러 갈 수 있기도 하다. 매일 밤이면 엄마와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꼭 끌어안고 잠드는 시간도 좋다. 어쩌겠는가, 강릉에 있으면 강릉이 좋고 부천에 있으면 부천이 좋은 것을! 하지만 이런 생활도 어쩌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9월이면 부천 집의 계약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사이 9월은 지났고 나는 지난 오피스텔 근처에 다른 오피스텔을  얻어 일 년간 유예기간을 더 가져보기로 했다. 그리고 서울로 이사를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직도 갈피를 못 잡은 상태이다. 강릉으로 아예 내려갈지, 지금처럼 부천에 남아서 두 도시를 왕복하는 생활을 이어나갈지, 이도 저도 아니면 또 다른 제3의 도시에 발붙이든지 결국 머지않은 시일에는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사실 이미 나도 안다, 정답은 없다는 것을. 다만 그 어느 곳이든 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소화하며 지낼 수 있기를. 조금 더 욕심내 보자면 좋아하는 일도 적당히 즐기면서 살 수 있을 만한 집을 찾을 수 있기를. 어쩌면 귀가라는 의문형이 아닌 오늘도 귀가라는 완결형인 평탄한 삶을 바란다. 덧붙여 물론 그동안 나도 많이 울었지만 내가 울린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안온한 귀가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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