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러나 나에게 변함없는 1순위 먹거리가 있다. 지칠 때 더욱 생각나는 소울푸드, 그것은 바로 멸칫국물 진하게 우려낸 따듯한 국물에 오돌토돌 쫄깃쫄깃한 손칼국수이다.
비가 내리고 흐린 날에는 손칼국수를 해주시던 엄마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밀가루를 꺼내고 콩이며 들깨, 마늘을 돌확에 곱게 가는 것을 시작으로 엄마는 먹거리를 준비하셨다.
곰표 밀가루 반죽하고 터울 지는 언니를 중심으로 우리에게 작은 반죽덩어리를 떼어 줬다. 어린 우리도 조물조물 반죽을 치댔다. 엄마와 언니가 사이다병을 굴려서 원형으로 얇게 편 반죽을 길게 돌돌 말아 부엌칼로 쓱쓱 자르면 줄줄이 국수가 되었다. 주로 감자는 먹기 좋게 반달 모양으로 편 썰고 호박은 채 썰어서 넣었다. 한소끔 끓어오르면 가마솥 열기가 얼굴에 훅 와닿는다.
엄마의 칼국수는 더울 때와 추운 계절에는 특식으로 국물이 달라지기도 했다. 맷돌이나 확독에 검정콩 갈아서 얼음 동동 띄운 콩칼국수에 아삭아삭 열무김치로 풍미 더하고, 동절기에는 들깻가루 곱게 빻은 고소한 들깨칼국수로 김장김치에 곁들여 후룩후룩 먹기도 했다. 영혼까지 따듯해지는 소울푸드를 배부르게 먹었다. 그리고 어둑해질 때까지 고샅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요새 아이들은 언제부터인지 공부와 활동에 허덕이느라 오히려 집밥을 놓치고 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는 저녁식사도 학교에서 먹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한밤중에 귀가한다. 주말에도 여섯 식구 모두가 한 자리 모이는 것이 쉽지 않다. 아이들이 각각 다른 활동으로, 저마다 밥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밥상머리에 앉아서 오순도순 숟가락을 뜨며 정담을 나누는 식구(食口)가 되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리하여 2021년부터 남태령 주말농장에서 시작하여 집에서도 바베큐 파티를 하고 있다. 토요일 저녁은 모두가 일찍 돌아와 상추와 케일을 씻고 당근과 오이를 썰어 가지런히 아이들과 함께 준비한다. 고기 굽는 아빠와 서로 쌈 싸주며 사 남매가 한자리에서 알콩달콩 가족애를 느끼는 자리이다.
매일 먹는 세끼를 대충 때우듯이 허기(虛飢)만을 채우는 것은, 이 시간에 관심과 정성을 쏟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내 몸을 돌보지 않고 대충 아무거나 먹고 제대로 먹은 것 없이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자원봉사 기본교육’을 하면서 학생들과 끼니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눈다. 아침 7시 전후로 집에서 나와야 해서, 삼십 명 내외의 반원 중에 열 명도 안 되는 학생만이 조식을 들고 온다. 점심식사는 학원숙제가 많은 날은 못 먹기도 하고, 저녁식사는 학원수업 전에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삼각김밥으로 ‘때운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자원활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아침에 챙겨주는 어머니 아버지의 손에 들린 우유나 주스, 물이라도 마시고 등교하기를 권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부터 그 마음을 살피어 받들어 섬기는 것으로 봉사(奉事)가 시작된’는 말에 학생들 눈이 커지고 관심을 보인다. 부디 가능한 음식을 들고서 하루를 시작하기를, 이웃으로서 엄마로서 당부한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만드는 근간은 먹거리로부터 시작된다. 달리 영양제나 보약을 먹어야만 필수적인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이 아니다.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병을 치유할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즐겨 먹는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한다. 우리의 됨됨이와 생활태도를 먹거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삶과 철학을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을 잘하고 즐겨하는 사람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다. 흩어진 가족들이 모여들고 온 집안과 단체의 분위기까지 밝고 훈훈하게 만든다. 게다가 나눔의 기쁨을 아는 이라면 그 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진다.
음식에는 그리움이 깃들어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엄마의 부지런한 사랑은 풍성한 밥상으로 터울지는 오 남매를 모았고, 집안의 분위기까지 푸근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한정된 텃밭 재료로 다채로운 밥상을 차렸는지, 신기한 생각이 든다. 소박하지만 정성으로 찬란했던 엄마의 뚝딱뚝딱 마술 같은 밥상이 그립다.
아이들과 지인들에게 나를 기억하게 하는 소울푸드가 무엇일지 궁리한다.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 먹거리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바람이 끼니와 간식거리에 마음을 담아내게 하였다. 그릇 하나하나에 정성스러운 마음을 나누면서 빛바랜 삶에 생기가 돌았다.
한 끼를 네 번에 걸쳐 다르게 준비하면서 오늘도 되새긴다. 끼니는 밥상을 넘어 자신을 향한존중이고 대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