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오십부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낯설지 않는 사람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몇 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보연 언니가 그랬다.
어느 날 불쑥 메시지가 왔다.
마치 어제도 대화를 나눈 것처럼!
이정! 잘 지냈어? 뽀연이도 너랑 같은 하늘에서 친가 외가 돌아다니며 정신없이 보냈다. 실은 한국 잠깐 들어왔어. 각종 병원 나들이에 신랑과 울 엄마 챙기느라 연락
못 하다 신랑 이태리로
보내고 나서 이제야 연락한다.
나도 27일에 이태리 돌아가니 얼른
상봉 날짜 정해. 보고 싶은 얼굴 봐야겠다 하하. 난 지금 석촌 호수 근처에 집 하나 얻어 있으니 평일 점심이나 저녁 너 스케줄에 맞는 날 정해서 빨리 얼굴 보자.
습관처럼 다니는 길만 가느라, 낯선 곳에 한 달 살이 중인 그가 역시 '보연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달려갔다. 석촌호수 동호에 있는 퓨전 함박스테이크집 향하면서 송리단길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언니 이렇게 멋진 곳을
어떻게 안 것이야?
나는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이 있는 석촌호수 서호 쪽에 드나들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었다. 한국 안 사는 그가 이런 곳을 어찌 알았을까. 아이들 말처럼 '신통방통'했다. 경리단길, 망리단길처럼 송파에 있어서 송리단길이란다. 명소에 불러줘 더 반가웠다.
"이런 게 있으니 얼마나 쉬워" 그러면서 전화기를 내게 보여준다. 그는 검색과 어플 사용에 능숙한 글로벌 신중년. 전화기 화면 지도에는 우리가 서있는 위치와 목적지 방향이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는 호숫가 정경이 마음에 쏙 들어서, 그리고 맛집이 몰려 있어서, 게다가 롯데타워가 웅장하게 서 있는 것을 보며 산책할 수 있어서 이곳에 만족하고 있었다.
석촌역 바로 인근에 '한 달 살이'로 머무는 중이라 훤하게 길을 다 꿰고 있었다. 여행자답게 어플 사용에 매우 능해서 놀라웠다. 길눈도 밝아서 나보다 척척 맞춤으로 잘 찾는다.
키오스크에 그가 선택하는 대로 골고루 푸짐한 구성의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겁고 배부르다. 든든한 식사를 마쳐서 걸음이 무겁다. 비가 내리는 호숫가 카페 거리가 이국적인 볼거리로 눈을 사로잡았다.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거나 브런치를 드는 모습이 한가로워 보였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놓은 카페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빗소리와 섞여서 들려왔다.
몇 해 전, 1월 1일에 받았던 장문의 편지를 읽고 읽고 또 다시 읽었다. 나는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 비상시국에 지쳐 있었다. 기나긴 터널을 지나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에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잿빛처럼 울림 없던 시절, 노숙인 무료급식소에 나가면서 나는 서서히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내게는 올 것 같지 않았던 버거운 나이를 받아들이고 하늘이 내게 준 천명(天命)을 생각하였다. 성당에 복사로 봉헌하는 아들을 통해 미사와 기도의 축복을 깨닫게 되었다. 예사롭게 읽었던 보연 언니의 글, 신앙 고백으로 시작해 봉사와 소명을 깨닫게 되기까지 여정이 이제서야 가슴에 와닿는다.
그 장문의 신앙고백과 충만한 기쁨, 그리고 언니의 꿈까지 그때는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다. '그저 잠시 씌어서 그런 것'이려니 가볍게 생각했었다. 얼마가지 않는 코스프레처럼, 지나가는 유행처럼, 그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거니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십여 년 전 이태리 밀라노 한인사회에서 첫 만남,
보연 언니는 똑 떨어지는 밀라노 멋쟁이였다. 게다가 유려한 화술이 매혹적인 사람이라 범접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는 세련되고 고혹적인 차림에 화려한 장신구와 킬힐을 신은 꼿꼿한 자세, 여유 있으며 똑 부러지는 말씨로 어디에서도 눈에 띄었다.
뛰어난 화술과 칼러풀한 삶으로 대인관계도 매우 원만했다. 이태리 국제 결혼 여성모임, 이국결에서 회장을 했었고 국내의 '아트앤컬처' 월간지에서 밀라노 특파원으로 7~8년 활약을 했다. 기자로서 페이스북으로 발탁되었을 만큼 사진도 글도 삶도 매력적이고 호소력 있었다.
긴긴 코로나로 암울한 시기를 벗어날 때 즈음 장문의 편지에 상세히 기록한 그의 다짐과 신념 어린 글,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를 향한 공부와 자격증 시험, 여정이 세밀하게 적혀 있었다. 봉사활동으로 시작해 소명을 깨닫고 치열한 생로병사 현장에 함께하는 모습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현세는 피를 흘리는 순교의 시대는 아니다. 어린 시절에 사랑으로 키워준 할머니 잔상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요양병원에서 어르신들에게 헌신적으로 활약하는 유쾌한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죽음을 기다리며 순응하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어르신들. 그들에게 따스한 시선으로 자원활동가로, 사회복지사로, 간호조무사로 점차 구체적이고 깊어졌다. 사랑과 헌신으로 살아가며 굳건한 기도와 선한 의지, 실천력이 성녀의 삶으로 다가온다.
그는 출퇴근하는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오십이 넘어서야 여러 역할로 살아가게 되었다. 아이를 두지 않은 대신, 어르신들에 대한 사명을 확신하고 본인의 일이라고 굳건히 믿고 활동하게 되었단다.
확연히 대비되는 반전의 삶,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조금씩 낙숫물이 바위를 적시듯 그 꾸준함이 한결되게 이끌었으리라.
오십부터가 진짜 삶이야!
우리에게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시간이 너무 없어.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고서는
무엇인가를 할 수도 이룰 수도 없지
식당에서, 카페에서, 비 내리는 호숫가를 걸으면서 그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우리가 함께하는 4시간 내내 놀라웠다. 역할은 다르지만 우리의 시작과 과정이 맞닿아 있어서 기뻤고 언니가 참으로 새롭게 느껴졌다.
내가 알던 보연 언니는 어디로 간 것이야?
예전의 그도 오늘의 모습도 모두가 다 같은 보연! 카리스마 넘치는 아름다운 김보연이다.
"이정, 건강하게 1년 잘 살아내고 내년에 더 기쁘게 보자. 이태리 가서 연락할게."
서울, 일본(동경), 미국(LA), 그리고 이태리(밀라노)에서의 열정 가득한 삶!
역시나 멋진 사람, 김보연~!
오래 전부터 준, 킴이라고 불리는 그는 일본에서도 이태리에서도 외모가 눈에 띄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세월이 지나도 외모뿐 아니라, 내면까지 단단한 어른으로, 신념이 가득 찬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