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나의 벗, 이쁜집 할머니

이웃, 또 다른 이름의 부지런한 사랑

by 에밀리


친정어머니처럼 산타처럼 이웃에 사는 오랜 지인, 나의 이쁜집 할머니. 에밀 입으라고 옷이며 아이들 쓰라고 문구류 등 잔뜩 나눠주고 실내화까지 챙겨준다. 선물꾸러미보다 생각하는 그 마음이 감동이고 감사하다.


나는 그릇장 열어 우일요 백자오리 포장하고, 뜨개 수세미, 실용적인 소창행주도 같이 드릴 수 있어서 뿌듯하다.


2021년 9월 펜데믹 삼엄했던 그 시절


장인이 만든 커다란 부채에 화백 친구가 모란을 그렸다. 한창 모란꽃에 흠뻑 빠져 있어서 친구가 단오날에 선물로 주었다. 나는 귀하게 온 작품부채를 거실 한켠에 전시하고 몇 달을 바라보았다. 집에 방문한 장여사님이 부채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시원스럽게 들고 감상하는 모습이 참 멋스럽다. 더 어울리는 장여사님에게 부채를 드렸다.


오전 열 시부터 두 시까지 시간이 금세 가버렸다. 친정엄마에게 그러듯 아양도 떨고, 이런저런 사는 얘기 나누었다. 교직생활 40여 년 학생들에 대한 이해와 여교사들의 불편한 진실, 자녀와 손주 지도, 육아 관련이야기, 세금, 정치 등 이야기가 끝이 없다.


9월, 정원에서 나무와 꽃을 보며 계절의 변화, 세월의 무상함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번갈아 시를 낭독하고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그리고 여유롭게 천천히 걸으며 도란도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방년(芳年) 88세, 미수(米壽). 평생을 검약한 삶을 바탕으로, 부지런한 사랑을 베푸는 장여사님. 부디 오래오래 함께 하소서!



-2021년 9월, 아직은 여름날에






월요일 워커힐호텔 지인의 패션쇼, 화요일 스타트업 특강, 수요일 문학관 수업, 나들이 다녀오다가 같은 장소에서 장여사님을 만났다. 횡재가 3일이나 내리 반복되었다.


장여사님은 하루 두 번, 선선할 때, 오전 오후 나누어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 시간대에 내가 그 길을 지나쳤던 것이다. "에밀, 매일 보니까 좋구먼!" 함박웃음으로 반기는 이쁜집 할머니.



전철역 나오면서 도심지 숲공원으로 연결된다. 묵묵히 운동하는 장여사님을 마주한다. 꾸준한 일상의 반복,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은 지하 주차장에서 천천히 걷는다.


집에서 아이들이 밥때를 기다리고 있어서 속사포처럼 정겨움 나누고, 뒤에서 와락 끌어안았다. 갈수록 더 짙어지는 나의 벗, 92세 이쁜집 할머니. 어느새 엄마처럼 느껴진다. 불룩 나온 배도 사랑스럽고 얼굴에 검은 기미까지 어여쁘다. "엄마, 엄마!" 나지막이 부를 수 있는 사람. 그 존재만으로도 힘나고 기분 좋은 나의 이웃 엄마.


처음 알던 20여 년 전이나 지금도 한결같이 푸근하고 정겹다. 엄마도 없이, 자식을 넷이나 씩씩하게 기른다고 그것만으로도 날 지지하고 챙기는 장여사님. 먼발치서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 달려간다.


부디

오래오래 이웃으로, 큰 어른으로

뵈올 수 있기를!



~2025년 5월 28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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