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후(後) 사내남(男)으로 태어나

어쩌면 눈물겹고, 어쩌면 눈물 말랐던 날들

by 에밀리


뒤후 사내남으로 태어나

1958년 유월에 쉰둥이 후남이

나는 일곱 자매 막둥이, 농부의 딸

환갑 지나고 아버지 눈이 보여

오빠 없는 집에 아들 같은 딸이었네


스물여덟, 자고 일어나 소리만 들려

세상이 온통 연탄색으로 깜깜해

살기 위해서 뭐든지 만지고 듣고

알아내려 혼자 어둔 세상 열었어

알피 망막색조변성증,

눈먼 딸에게 어머니 눈 주려는

애끓는 모정 간절했네

망막을 들여낼 수 없어,

수술할 수 없어


칠흑 같은 어둠,

한 치 앞도 알 수 없어

문 열다가 미간이 찢어져

다섯 바늘 꿰매고

싱크대 모서리에 발가락이

부러져 한 달을 못 나가고

길 가다 엎어져 앞니 두 개 깨졌어

코뼈마저 부러져 마음도 부러져


나 어떡해 이대로 죽어?

이걸 먹고 잠들면 못 일어날까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고 싶어

요양병원은 싫어

자연사해야 시신 기증할 수 있어

내 눈을 연구해서 답답한 세상

훤하게 열어주려고


그래도 좋을 때, 어떨 때가 좋아?

밖에서 비장애인들과 만날 때,

얘기하고 산책할 때 마음 편안해져

내가 보였던 그 시절이 그려지고

초록 나무와 찬란한 태양이 느껴져

볼 수 있었던 그날들,

내가 마음껏 웃을 수 있었던

그 빛의 날들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

안 보이는 막막한 나를 잊어


네가 뭘 알아?

배움 없어 가슴 멍하고

코끝이 시큰거리고

이렇게 살아가야 할까

저런 사람들이 더 못 낫지!

정신병자, 정신이상자,

결백증 환자라 막말하면

간신히 부여잡은 마음 무너져 내려


제일 좋아하는 말

사랑해,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산 그대로

베풀어 보답하고

아낌없이 욕심 없이 살아가야지

장애인을 모르고서

함부로 말하지 마오

네가 안 보이는데 뭘 알아, 무시할 때

집에 있는 물건 사용법을 아는데

안 보여서 접촉이 안 돼서 막막해

안 보이는 네가 이 물건 왜 사놨냐?

귀로 듣고 코로 맡고 손으로 보여


내 인격을 어떻게 지켜야 하나,

모독당했을 때는?

장애인들 짓밟고 무시하지 마오

우리는 모두가 잠정적 장애인이오

아침에 멀쩡히 나가서

저녁에 장애인으로 돌아올 수 있어


십수 년, 시각장애인 지압사 일했어

쉬어가며 이십 년, 당당하고 좋았어

2001년 택시문에 치여 손을 다치고

일을 못하게 되어 가슴이 쾅 막혀버려


나 홀로 서기 사십 년

아플 때 입원할 때도 나는 혼자였어

어쩌면 눈물겹고

어쩌면 눈물이 말랐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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