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양재천을 걷는 53년생 세실리아
양재천은 군더더기가 없다. 물은 물답게 흐르고, 나무는 나무답게 서 있다. 말없이도 제 몫을 다하는 풍경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낮춘다.
“ 나무가 좋다. 겨울나무가 참 좋아! 잎새가 무성한 나무는 속을 모르겠고, 마지막 잎새까지 떨군 겨울나무가 참말 멋스러워." 말을 들으며 나무가 언니의 생애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는 잘하는 것이 없다.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73세, 그는 하루도 안 빠지고 양재천을 걷고, 집안을 살피고, 자식들의 시간을 존중하며, 돈의 흐름을 읽는다.
젊은 시절, 삼십 대 중후반에 원단을 다루는 이모의 가게에서 일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때마다 그의 눈빛은 반짝반짝했다. 모직물을 팔던 가게에서 직접 제작한 면 골질을 숨어서 팔았었다. 줄 서서 사던 사람들, 큰 인기몰이로 3배 4배 매출이 늘어 꽤 많게 재미를 봤단다. 그 시절이 종잣돈이 되어 큰 집을 몇 채 장만했다.
그의 시간은 언제나 일과 살림의 양면을 동시에 가진다. “내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특별한 걸 못 해.” 말끝이 바람에 섞여 흘러가자 억새풀이 온몸을 흔들었다. 스스로를 낮추고 낮추어서 더 단단해진 삶이었다.
어릴 적 이야기가 나왔다. 학교에서 글을 쓰라면 큰언니가 대신해 주고 온갖 과제를 도맡아 해서 글을 못 쓴다며 손사래 친다. 어렵던 시절의 식탁, 엄마는 아버지를 많이 사랑했고, 아버지는 밖에서 인기가 많았다. 사랑과 결핍이 동시에 자라던 집에서 요리를 배웠고, 기다림을 배웠다.
26세에 여섯 살 많은 무뚝뚝한 남자와 결혼하고,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낳았다. 기나긴 세월 살림을 배움의 교과서로 삼았다. 반세기 전에 가정학과를 졸업하고, 살림을 늘리고, 아이들을 키웠다. 호된 시어머니 시집살이에 눈물 닦으며 다시 끓이고, 다시 재고, 다시 걷는 법을 배웠다.
양재천의 물소리는 여전히 편안하다. 걷기는 정처 없는 불안에서 벗어나 맘껏 숨 쉬게 한다. 우울은 걸음을 멈춘 다리에 찾아온다. 걸으면 생각이 유연해지고, 몸을 움직여야 마음이 움직인다.
나무 사이로 길을 걸었다. 가로등 빛이 얼굴에 얹혔다. “이만하면 복을 많이 받았다” 다 만족할 수는 없어도 지나온 삶을 겸허히 바라보고 감사하는 삶이다.
"왜 언니가 맨날 사?"
"복 받으려고 그라지!"
"내가 낼게요. 얻어먹는 복도 있어야지!"
커피 향이 바람을 탔다. 양재천 수변문화쉼터 큰 창문에 저녁 풍경이 그림처럼 걸렸다. 컵을 들고서 뜨거운 유자차, 시원한 복숭아차를 마셨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을 섞지 않는 언니의 취향처럼, 삶에도 섞지 않는 원칙이 있다.
될 일과 안 될 일을 가르는 선, 오늘과 내일을 헤매지 않는 눈금은 필요와 욕망을 구분하는 힘이다. 그는 “조금만 더”를 경계한다. “내는 나무가 좋아!” 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늘을 만들며, 계절을 견딘다. 그의 삶도 그렇다. 정직하게 나눔을 숙명으로 안고 온 세월이었다.
계절을 놓치지 않고
길 안내를 하는 사람
약속을 지키는 어른
한결같은 따스함으로
배려가 삶이 되었다
그에게서 길을 보았다. 빠르지 않아도 도착하는 길, 혼자서도 넓어지는 길. 걸음 소리와 수변의 물소리, 억새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남았다.
하나도 잘하는 게 없다고 하면서, 하루를 잘 사는 법을 보여 주는 사람. 오히려 특별하지 않아서 오래가는 힘, 나무에게 길을 묻는 법을 아는, 세실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