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라레솔도 06화

생애 첫 마라톤, 어울림

by 에밀리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어울림 마라톤 대회에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같이 <스몰 스파크 > 활동하는 시각장애인 김정숙 선생님과 파트너로 동행하게 되었다.


만국기가 휘날리고 여기저기 하얀 천막부스가 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오고,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준비운동을 하고, 하늘은 파랗고 볕이 뜨겁다.


며칠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선선함이 느껴진다. 2024년 무시무시한 폭염을 이겨냈다. 8월의 마지막 날에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가을이 오는 기대감으로 릴케의 시를 몇 번이나 읊조린다.


'가을이 오긴 오려나' 끝날 것 같지 않던 한여름의 기세가 서서히 가시고 있다. 아침 8시, 양산 들고 걷기 좋은 날이다.



우리는 하프 마라톤 5킬로 출전자, 사전등록자 부스에서 배번호를 받고 서울지역 지회 시각장애인 천막에서 대기했다. 10킬로는 마라토너팀, 5킬로는 도보 출전이다.


나의 파트너, 김정숙 카타리나 선생님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었다. 선생님은 40대 후반부터 초점이 잘 안 맞아 불편했고 점차 20여 년 후에는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처음에는 장애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어요. 왜 하필 내가? 나야 하는지! 하늘을 원망하고 밖에도 안 나갔지요.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가 이러면 가족이 힘들어지겠구나, 이러다 나를 밖에 버리면 어쩌나" 웃으며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간다.


가족애와 신앙심으로 얄궂은 운명에 순응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차분하게 깊은 통찰력으로 겸허히 살아가는 어르신이다.


하늘은 파랗고 햇볕은 쨍하고, 현장 분위기


마라톤 출발 선상에 서기 전에 음수대 받아오면서 평화의광장 현장 분위기와 카타리나 선생님을 사진으로 담았다.


9시에 10킬로 마라토너팀이 먼저 출발, 5킬로 걷기 팀은 10분 후 출발! 우린 여유롭게 바람 부는 숲길에서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오른팔을 내드리고 호흡 맞추어 걸었다. 몽촌토성길과 호숫길을 걸어 올림픽공원으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다.


나무가 양옆으로 양달보다 응달이 길게 이어졌다. 시간대별 나무 그림자 그늘까지 체크하고 날을 정했나 싶으리만치 쾌적했다. 주변 풍광이 멋지고 앞뒤 옆으로 함께하는 분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할아버지, 아버지, 초등학생 손녀 3대 팀이 눈에 쏙 들어왔다. 시각장애인 할아버지를 양옆에서 챙기는 가족팀은 참으로 돋보였다.


셀카봉을 치켜들고 아버지 이야기를 기록하고 안내하는 아들의 모습, 웃는 얼굴로 할아버지 손을 꼭 잡은 손녀는 천사였다. ' 가정에 하느님 축복이 가득하길!' 화살기도 보낸다.


2킬로 지점 즈음부터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10킬로 마라토너팀이 반환점을 도는 것을 보았다. 이삼십 대 청춘들이 많았고 장애인과 손목을 묶고 뛰는 팀도 꽤 되었다. 십 대 아들과 사오십 대 엄마의 뛰는 모습, 노령에도 가뿐히 달리는 어르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화면에서만 봐온 러너들의 모습은 감흥이 없었는데 현장에서 직관하며 생생하게 와닿았다. 그들에게는 한결같이 집념과 갈망, 의지가 서렸다.


간절한 그 눈빛이 무척이나 새로웠다. 차오르는 숨을 참아가며 페이스를 조절하고 멈춰 서지 않는 러너들은 생생히 반짝였다.


그들이 무척이나 부러웠고 존경스러웠다. 말로만 듣던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반드시 경험하고 싶다는 도전의지가 퐁퐁 솟아났다.


에밀리는 오른쪽 맞은편에서 뛰어 오는 그들을 향해 "멋지다! 파이팅!!! 굿 베러 베스트 !!!"

큰 소리로 외치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카타리나 선생님과 5킬로를 완주하고 평화의 광장에 돌아왔다. 포토존에서 이쁜 척, 멋진 척 해피해피, 그리하여 즐겁게 살아지리라!



양산은 저만치 놔두고서 오늘을 기념하며 한껏 즐겼다. 마음에 날개 달아 훨훨 가볍게 두둥실 떠가는 것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과 새로운 도전을 향한 의지이다.


울대학교 동아리 학생들이 시각장애인 사진어플을 제작하여 알려주는 인생 네 컷 사진 서비스도 있었다. 카타리나 선생님께서 큰 관심을 보이며 사진 읽어주는 설리반 어플을 언급하였다.


시각장애인들은 밖을 나오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암흑이다. 그 어둠을 살아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공부하며 치열하게 기억하고 익히며 살아간다.


88 올림픽 때부터 켜진 성화가 활활 타오른다. 선생님이 말한 위치에 놀랍게도 성화가 있다. 송파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고 수 십 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거리 풍경과 방향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88 올림픽 때부터 있는 실제 불꽃이다! 주변이 그늘이고 몇 발자국 떨어져 서있는데도 불기운이 후끈 달아오른다.


성화를 보면서,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매순간을 활활 타오르는, 깨어서 살아가는 시각장애인을 생각한다.


날이 화창해서 몽촌토성역으로 가는 길에 푸르른 하늘과 초록나무, 그리고 조형물과 아름다운 카타리나 선생님을 기록으로 남겼다.


념메달이 볼수록 더 근사해서 앞뒤로 자세히 바라본다. 우리는 도보코스라 뛰지는 못했으나 현장에서 같이 걷고 봐온 러너들의 간절한 숨결이 뿜어져 온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호흡 맞추며 '같이 가치로운' 마라토너들의 배려와 경청, 조화로운 발걸음이 보인다.


기념품을 완주 후에 수령하러 부스에 찾아갔다. 기념품은 하안색 목욕타월, 니베아크림, 천하장사스틱 2개, 모기벌레기피제. 그리고 본죽에서 제공한 김치볶음밥 도시락이다.


도시락 받으러 늦게 갔더니 많이 남아서 양껏 더 가져 가랜다. '일쑤 좋구나, 좋아!' 집에 있는 아이들 도시락도 여유 있게 받아와 주부로서 뿌듯했다.


김치볶음밥이라 상할 염려 없고 아이들 입맛 맞춤이라 좋다. 8월의 마지막날 토요일 오후에 불 앞에 땀 흘리지 않아서 감사하다.



보이는 에밀리보다 더 잘 보고 앞서 훤히 인지하는 카타리나 선생님의 혜안! 안내와 묘사, 그리고 삶을 대하는 겸손, 통찰력에 뵈올 때마다 많이 느끼고 배운다.


자애로운 어머니요, 할머니, 그리고 아내요, 직장인으로서 정갈하고 기품 있게 살아가는 카타리나 선생님을 닮고 싶다. 시간이 금세 지나가고, 내가 환승하는 석촌역에서 내리며 아쉬웠다. 지하철을 나와 유리창으로 바라본다. 선생님은 그 자리에 앉아서 물을 꺼내어 마시고 있었다.


성호를 그으며 카타리나 선생님을 향해 기도했다. 가시는 길, 함께 밝혀 주시기를+ 비장애인 에밀리를 안내하고 하루를 초록으로 물들인 천사, 카타리나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직 더운 여름이라, 모처럼 오래 걸어서인지 저녁에는 발바닥이 화닥거렸다. 아이들 넷이 어릴 때는, 하루에 현관을 열댓 번도 넘게 넘나들며 늘상 분주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이제 폭염도 슬슬 가실 날이 멀잖다. 다시 더 걷고 또 걷자! 몸을 움직이며 깊은 숨을 들였다가 천천히 내쉰다.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면의 나를 알아차리며 멈추어 호흡해 본다.


좋은 이웃, 카타리나 선생님과 함께하여 감사하다. 마라토너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지를 품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뛸 수 있는 그날까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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