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손이 조금씩 필요 없어지기 시작하던 해가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던 그 무렵이었다.
아이의 하루는 점점 나 없이도 잘 굴러갔고,
손이 많이 가던 시간이 끝나자
비로소 나에게 시간이 생겼다.
그런데 그 시간은 자유가 아니라
이상하게도 텅 빈 느낌으로 다가왔다.
문득 이런 질문이 자주 떠올랐다.
나는 누구지.
나는 뭘 좋아했더라.
엄마들이 한 번쯤 겪는다는
그 ‘정체성의 파도’가
나에게도 밀려왔다.
그래서 시작한 게 테니스였다.
누군가의 권유도, 특별한 목표도 없었다.
그냥 나만을 위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공은 늘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고
몸은 생각보다 빨리 지쳤다.
라켓을 쥔 손에는 괜히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려움’이 나를 붙잡았다.
배울 게 많다는 게 좋았고,
처음부터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다.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역할도 아닌
그냥 ‘처음인 나’로 있어도 되는 시간이 좋았다.
지금도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테니스나 러닝을 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뛰고
땀이 온몸을 적신다.
가끔은 나가기 싫은 날도 있다.
소파에 누워 있고 싶은 날도 많다.
그래도 운동화를 신는다.
그리고 운동을 마치고
샤워기 아래에 서면
비슷한 감정이 늘 찾아온다.
‘오늘은 나를 미루지 않았다’는 기분.
운동 전과 후의 마음은 확실히 다르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고민들은
대개 별것 아닌 일처럼 느껴지고,
가끔은 의외의 답이 떠오르기도 한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잠.
젊었을 때는 밤을 새워도 멀쩡했는데
이제는 잠을 못 자면
그다음 날 하루가 통째로 어긋난다.
낮에 햇빛을 보고,
몸을 제대로 쓰고 나면
밤에 깊게 잠든다.
나이가 들수록
잠은 사치가 아니라
버텨내기 위한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다.
운동의 또 다른 선물은 사람이었다.
같이 땀 흘리고,
같이 웃고,
같이 실수하는 관계.
나는 그곳에서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게 얼마나 편한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이 6년 동안
나는 몸을 만든 게 아니라
나를 지탱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의 삶이
점점 나 없이도 확장될 때,
나는 내 삶을
다시 굴리기 시작했다.
운동은
나를 더 젊게 만든 게 아니라,
나를 다시
‘나’로 불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