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 집을 떠난다.
결혼하기 전까지 대부분 부모와 함께 사는 한국과는 다른 현실이다.
나조차 겪어보지 못한 이른 독립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씩씩하게 보내야지.”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엄마, 이제 가도 돼.”
“울 아들, 엄마 아기. 엄마는 울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워.”
그 말을 하자마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시작 앞에 선 아들은 설렘으로 가득했고,
끝 앞에 선 나는 추억을 붙잡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미국으로 떠날 때,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면서도,
가까이서 볼 수 없다는 상실감에 슬퍼하셨을 그 마음이
이제야 가슴으로 느껴진다.
남편과 둘만 돌아온 집은 유난히 조용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쌓이던 빨래 바구니는 가볍고,
운동하던 아들을 위해 매일 돌리던 세탁기도 멈췄다.
아침마다 분주하게 싸던 도시락도 더 이상 필요 없다.
“엄마 도시락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그 말이, 그 웃음이 그립다.
학교 라이드를 챙기고, 일정표를 확인하던 바쁜 날들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냉장고의 우유는 줄지 않고, 장 보는 횟수도 부쩍 줄었다.
그동안 집이라는 공간이
온통 아들의 시간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이제 그 빈 공간을 나의 시간으로 채워야 할 때다.
아이에게서 한 걸음 물러선 만큼,
나는 나에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아이를 키운 18년 동안,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많은 희생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아들이 떠난 방에 앉아 돌아보니
오히려 내가 아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걸 알겠다.
엄마라는 이유로,
아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최선의 시간이 나를 성장시켰고,
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 꿈도 키워 주었다.
결국, 아이를 키운 18년은
나를 키운 18년이었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보호자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보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아들과 나.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각자의 길에서 여전히 함께 성장하는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