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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란 Oct 19. 2023

연수

4kg, 6kg, 8kg, 그다음은 12kg, 14kg…. 내가 다니는 헬스장엔 10kg짜리 덤벨이 없다. 그래서 8kg을 팔로 들다가 아쉽게 느껴질 때면 12kg으로 바꾸곤 하는데 이 무게는 나에게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 토르의 망치처럼 느껴진다. 4kg 차이, 그 사이에서 오늘의 운동이 자극 위주로 인지, 아니면 인지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아령만 잡으면 되는데 난 요즘 운동이 하기 싫다. 취미로 헬스를 한 지 5년이 지났다. PT도 받아봤고 대회도 나가봤지만 나에게도 ‘운태기’가 온 것 같다. 돈까스, 떡볶이, 고기, 자장면에 탕수육을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헬스장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걸 보니 확실하다. 게다가 날렵했던 턱선이 유해지면서 성격이 좋아 보이기까지 하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아무래도 목표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난 다시 한 번 PT를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하루에 한 번은 접속하는 헬스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갔다. 운동습관은 예전 같지 않지만 헬스에 중독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부지런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현실은 달라지는 게 없긴 하지만. 여기서는 은연중에 PT를 모집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혹은 반대로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사람들에게 쪽지를 보내서 PT를 받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PT를 알아보러 커뮤니티를 둘러보았다. 모집을 하는 쪽으로 들어가자니 왠지 광고에 당하는 것 같고, 쪽지를 보내자니 부르는 게 값일 것 같았다.

    

‘대전지역 PT 선생님 추천 좀 해주세요!’ 글을 올린 후 많은 댓글이 달렸다. ‘OO휘트니스 OO선수 추천합니다’. ‘운동, 식단 등 노하우 알려드려요. 쪽지 주세요!’. 그중에 눈에 들어오는 댓글이 있었다. ‘수원인데 레슨생 모집합니다 ㅎㅎ’ 지역이 수원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가끔씩 눈여겨보던 카페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헬스장 1호점을 시작으로 2호점, 3호점까지 늘려가던 대표였고 그때마다 트레이너 구인 글을 올렸었다. 변화하는 레슨생들의 사진도 빠짐없이 업데이트되곤 했었다. 지역이 중간쯤이라 멀어도 서너 시간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전에서 수원까지는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OO카페 회원입니다. 레슨 받고 싶은데 가격이 얼마인가요?

― 회당 7만 원입니다.

차비는 대략 만원. 왕복은 2만 원. 게다가 레슨비가 7만 원이면 회당 10만 원 꼴이 되는 셈이었다.

― 여기가… 타 지역인데 혹시 할인 안 되나요?

― 그럼 회당 5만 원 해드릴게요.


회원이 없나? 만족과 동시에 불만족이 생겼다. 아무튼 배움은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계좌이체를 했다. 수원의 인계동. 고속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수원시청 어딘가에서 내려 보니 시간이 좀 남았다. 헬스장 밑 빽다방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오늘의 운동을 성공적으로 도와줄 고농도 카페인을 충전하기 위해서였다.

― 샷 하나 추가요.


첫 만남. 그는 키가 작은 편이었다. 하지만 헬스장의 대표답게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태닝을 세게 했는지 까만 피부 색깔과 반바지에 박시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헬스장 앞 현수막에 걸린 대표의 이력이 더욱 신뢰를 만들어줬다.      

OO년도 OO시 대회 -70kg 1등 

OO협회 이사

OO대회 심사위원 

등등


횟수로는 10회를 결제했다. 이 정도면 이곳에 오기 지칠 때쯤 끝날 것 같았고 가슴, 등, 팔, 하체, 어깨로 부위를 나눴을 때 2번씩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첫날은 가슴 운동으로 시작했다.

― 벤치프레스 해보세요.

뭐지? 거만하면서 거만한 느낌은? 예전에 PT를 받았다고 하니까 한번 해 보라는 건가? 잘못된 부분을 잡아준다는 의미인가? 명령조로 나에게 던진 말이 굉장한 혼란을 가져왔다. 일단 해보자. 

― 바벨은 내릴 때 가슴에 튕기지 말고 스트레칭 하듯이 늘려주세요. 올릴 땐 지긋이 밀어주고, 팔꿈치는 움직이지 말고.


근육에 자극이 잘 오는 대신 평소보다 중량을 올리기 힘들었다. 이제까지 하던 방법보다 만족스러웠다. 다음은 덤벨 플라이를 진행했다.

― 덤벨 플라이 한번 해보세요.

이제 분명해졌다. 처음부터 알려주기보다는 자세를 고쳐주는 방식의 레슨이었다. 덤벨을 잡고 양팔을 벌렸다. 다시 팔을 뻗어 덤벨을 모았다. 그리고 대표를 한 번 쳐다봤다. 그는 조금 더 해보라는 듯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 플라이와 프레스는 달라요. 미는 게 아니라 모아야지.


돈을 내고 혼나는 기분이라 별로였지만 맞는 말이기에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굴욕감은 대표가 친절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또 다른 불만이었다. 몸은 운동을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자꾸 다른 생각이 들게 하는 이상한 운동법이었다. 그렇게 난 운동을 마무리하고 짐을 싸들었다. 다행인 건 다음 주가 기대된다는 것.     

― 잘 가요.


서로 이름도 몰랐다. 계좌이체로 이름을 보긴 했지만 금세 잊어버렸고, 레슨 10회에서 더 이어질 인연은 아닌 것 같으니 모르는 편이 속 편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대표의 카페 아이디를 찾아 관련 글들을 찾아보았다. 후기가 어떤지, 잘 가르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레슨을 받기 전에도 찾아보긴 했지만 안 좋은 글을 찾아서 내가 오늘 느낀 것들과 대입시켜보기 위해서였다. 이상하게도, 댓글 알바를 쓴다고 믿을 만큼 안 좋은 글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꼰대인가?’


다음 레슨 날, 난 그 사람이 불친절하고 무뚝뚝하다는 걸 인정하고 헬스장으로 들어갔다. 그래야 내가 운동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표가 말했다.

― 오늘은 어디 운동할까요?


자기가 준비해와야지, 왜 나한테 어디 운동할지를 묻지? 하지만 입 밖으론 다른 말이 나왔다.

― 하체요.


첫 운동으로 스쿼트를 배웠다. 내가 동작을 선행하면 잘못된 부분을 잡아줬다. 

― 상체가 앞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어요. 허리를 좀 세우는 연습을 해요.

말투가 기분 나빠서 그렇지, 수업 내용은 인정하기 싫지만 마음에 들었다. 스쿼트를 끝내고 런지를 하는데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대표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날 이상하게 쳐다봤다.

― 엥? 끝이에요? 하체가 너무 약해요.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약할 줄은 몰랐고, PT가 끝난 뒤에 지하철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갈 생각을 하니 여기서 운동은 그만하고 싶었다. 하지만 레슨 시간은 30분이나 더 남아 있었고 시계를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시간이 가질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친하지는 않지만 말 걸기를 통해 쉬는 시간을 늘려야겠다.’ 나는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던졌다.

— 카페에서 회원들한테 쪽지 많이 오나요?

— 타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도 꽤 있나요?

— 여기 주변에 맛집 있나요? 


말이 없던 내가 질문을 시작하니까 의도를 눈치챘는지 대답을 1분 하다가도 ‘자, 다음 세트 가시죠’라며 말을 끊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모든 세트를 소화시키고 도망치듯 헬스장을 나왔다. 평소면 5분이면 지하철역에 도착했는데 15분이나 걸렸다. ‘여기서 하체는 다신 하지 말아야지…’

   

회차를 거듭할수록 그도 조금씩 노하우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나도 수원을 올 때마다 항상 곧장 집으로 갔었는데 이제는 주변을 검색해서 맛집을 찾기 시작했다. 운동이 끝나면 옆 동네 빵집에서 항상 치즈바게트를 사서 집으로 갔다. 치즈바게트의 달콤하면서 짭짤한 맛은 운동이 하기 싫은 날에도 빵을 먹기 위해 운동을 오게 만들었다. 여섯 번 빵을 사먹자 어느덧 8회차였다.     

— 오늘은 어디 운동할까요?

— 팔이요.


평소에 8kg으로 운동하던 이두근 운동이었는데 오늘은 6kg에서 한계가 왔다. 그리고 다음 운동으로 넘어가면서 대표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 이렇게 그립을 바꿔 잡으면 어디 자극이 들어가나요?

— 이두근이요.

— 아니, 그게 아니고 다시 생각해봐요.


그날따라 예민했던 건지, 시원하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던 건지 대표는 점점 인상을 쓰면서 공격적으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 이게 어떻게 이두근에 자극이 들어가나요?

‘알면 배우러 안 왔지. 배우러 온 사람한테 왜 화를 내지?’ 난 이해할 수 없었다. 8회차까지 레슨을 받으면서 점점 무뎌졌었는데 내가 처음 느꼈던 감정이 북받치듯 올라왔다. 굴욕감. 무례함. 왠지 오늘 이 헬스장에서 나가면 나머지 2회는 받지 않아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왜 여기까지 배우러 왔을까?’ 잡고 있는 덤벨을 놓지 않은 채 대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떠한 대답도 하기 싫었다. 그제야 대표는 말했다.

— 이렇게 하면 여기 자극이 들어가요.

 

별로 자극이 오지 않았다. 다른 회원들과는 웃으면서 레슨 하던데 왜 나한테만 예민한지 궁금했다. 8회차는 나의 인내심의 한계였고 운동을 마무리하고 짐을 싸서 나왔다. 입구로 향하는 나를 보면서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 잘 가요.


그렇게 나는 다시 다니던 헬스장으로 돌아왔다. 운동을 하기 전 평소처럼 헬스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서 게시물들을 보고 있었다. 그 대표의 게시물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의 정확한 이해와 움직임, 운동에 대해 배우고 싶으신 분들을 기다립니다! ‘회원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타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을 배려해 할인된 금액으로 모십니다.’


오매불망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토르의 망치가 제자리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난 더 이상 10kg의 덤벨이 필요 없었다. 힘이 불끈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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