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에 판서한 것을 슥슥 지우는 내 뒷모습이 보인다. 슥슥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무심하게 지우고 지우개를 내려놓다가, 무언갈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작게 '어머'소리를 지르고 뒤로 물러선다. 곧바로 함성을 지르며 키득거리는 학생들. 짓궂은 웃음소리들. 나는 뒤돌아서며 "이거, 나탈리 씨죠?"라고 확인하며 가서 팔을 살짝 때리는 시늉을 한다. 학생들은 이거 하려고 아까부터 기다렸다고, 선생님이 칠판을 너무 늦게 지워서 계속 기다렸다고. 깔깔깔 하하호호 즐겁다.
작은 바퀴벌레 인형. 당시에 유행했던 얼핏 보면 정말 벌렌가 싶은 인형이었다. 초등학생인 내 아이가 내 화장대에, 거실 의자에, 부엌 바닥에 종종 놓고는 놀라는 나를 보는 걸 즐겼던 그 작은 벌레 모형 인형이었다. 학생들은 내가 놀라는 걸 보려고 쉬는 시간에 망을 보고, 내가 뒤돌아 뭔가 하는 동안 살금살금 칠판 끝에 바퀴벌레 인형을 놓고 빛의 속도로 자리에 가서 앉는 계획을 세우고...
어우, 그립다.
내 핸드폰 속에는 '학생들'이라는 폴더가 있다. 옛날 옛날, 이런 비디오조차 무심히 찍고 생각 없이 주고받던 그 시절의 사진과 영상은, 물론 없다. 그때는 얼마든지 언제든지 뭐든지 찍어도 아무렇지 않았으니까 사진이나 영상의 소중함을 사실 몰랐다. 최근 2-3년, 무언갈 찍거나 촬영하는 게 부자연스러워진 후부터 사진과 영상을 모으기 시작했다. 옛날 것도 찾을 수 있으면 찾아서 모아 두고 싶다.
며칠 전 한 학기의 마지막 날, 수업을 마무리하며 조심스레 학생들에게 얘기해 봤다.
여러분, 우리 사진 한 장 찍을까요? 괜찮아요?
그리고 서둘러 이렇게 덧붙인다
싫으면 안 찍어도 돼요. 괜찮아요.
학생들은 다행히 좋아라 하며 머리 위로 하트, 다음은 손가락 하트, 다음은 서로 끓어 안고 함께 하트 하하호호 즐겁게 사진을 서너 장 찍었다. 사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찍기 때문에 누가 누군지 알아보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사실, 난 이 학생들의 하관을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마스크를 벗으면 누가 누군지 알아볼 자신이 없다. 학생들도 그건 마찬가지일 거다. 여자들의 경우 머리스타일만 바뀌어도 서로를 잘 못 알아본다. 눈 아래 하관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복도에서 어떤 학생이 매일 아침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느 날은 자기 이름을 대며 "선생님, 저 OO예요."라고 말하는데, 아... 정말 기억이 없는 학생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내 머리스타일이 지난 학기 자기 담임선생님이랑 너무 비슷했다고 한다. 그 선생님과 나는 체격도 비슷했기 때문에, 눈만 보고 판단하기에 완전히 그 선생님이랑 똑같았다며 미안하다며 사과까지 하고 갔다.
우리는 예전에(불과 4~5년 전에)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었다. 무언갈 찍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을 남기고 싶은 즐거운 마음일 뿐이었고,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그걸 알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찍는 것이 어딘가에 업로드한다와 같은 말이 아니었고, 어딘가에 업로드한다는 건 나쁜 용도로 그게 쓰일 수 있다는 것과 가상의 공간에 영원히 남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편한 우려들 때문인지, 레트로 트렌드 때문인지 아님 그것도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학기 마지막 날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오는 학생들이 다시 등장했다. 그 자리에서 찍고, 그 자리에서 사진을 주고 헤어지면 되니까 완전 깔끔하다. 저장되지 않으니까 참 좋다. 인쇄된 사진을 주고받을 정도면 꽤 가까운 사이이고 폴라로이드로 단체 사진을 찍을 일도 없고, 디지털화된다는 전제가 아니니 딱 좋다. 가볍게 재미나게 찍고 주고받고 끝.
시류에 안 맞게 나는 여전히,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라도 찍고 싶고 남기고 싶다. 먼 훗날 언젠가, 사진을 들춰보며 그들의 안녕을 기도하고 옛날을 떠올리고 추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