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업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대하여 쓰고 싶었다. 희로애락이란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즐거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꼭 써서 무엇을 해야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쓰는 행동은 과정이기에 결과를 상상하지는 않았다. 내가 이걸 써서 책으로 만들고 싶다 라거나, 내가 이걸 써서 나의 기쁨과 슬픔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지 라거나, 내가 이걸 써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고달픔을 하소연해야지 등의 마음은 없었다.
나에게 한국어 수업이란 희로애락 중 전적으로 '희'와 '락'이 큰 삶이어서, '희이이이이 노애 라아아아악'쯤 되겠지만 나에게도 '로'와 '애'가 있다. 팬데믹의 한 복판에 있는 데에도 학교에서 대면 수업을 고집할 때에는 내 직업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직업인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초중고 학생들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에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대면 수업을 시행한다 쳐도,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우리의 미래인가' 진지하게 회의(懷疑)했었다.
희한하게도 나는 마음의 스트레스보다 몸의 스트레스가 큰 사람이라서, 교실 냉난방이 고장 난 다거나 돌아설 수 없을 만큼 수업 공간이 비좁다거나 하는 물리적 환경이 주는 고달픔이 도를 지나칠 때, 나는 노엽고 슬프다. 철저하게 교육서비스업에 속하는 어학당 시스템상 학생은 고객이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수업은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교사의 몫이 크고, 열정과 끈기를 갖춘 개인기가 필요하다. 문화 차이인지 예의가 없는 것인지 판단이 어려울 만큼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학생들을 상대해야 할 때에도, 나는 종종 노엽다. 익숙해진 부분도 많이 있지만 새로운 발견도 잇따르기에 현장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들과 내가 만나는 시간 '10주'. 때에 따라 순식간이기도 하염없이 길기도 한 시간 '10주'. 그 10주간 만나는 인연들도 때때로 나를 슬프게 한다. 가끔 한국어 교사를 '한국에 대해서라면 무엇이든(언제든) 물어보세요' 애플리케이션 또는 대답 봇쯤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을 볼 때, 나는 나를 불태워 수업했다고 생각했는데 낮은 강의 평가를 받았을 때, 10주 간 나와의 서사는 싹 다 던져버리고 어떤 한 사건에 꽂혀 쌀쌀맞게 돌아설 때. 나는 '10주'라는 시간의 허탈함을 깊이 느낀다.
꼭 이렇게 소상히 설명하지 않더라도, 교실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헛헛해질 때가 있다. '오늘은 좀' 싶은 날들. 기쁘고 슬프고 노엽고 즐거운 4개의 감정으로 유형화할 순 없지만 나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많은 순간들이 있고, 그럴 때 나는 글이 쓰고 싶어 진다. 때론 사건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시원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많은 회사원들이, 직업인들이... 그렇게들 퇴근 후 글을 쓰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