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사람이 환영받는 곳

한국어 교실

by Agnes

침묵의 반을 만났다.


나 : 여러분, 주말 잘 보냈어요? 주말에 뭐 했어요?
학생들 : ......


나 : 여러분, 한국 영화 '오징어 게임' 봤어요?
학생들 : 네
나 : 아, 봤어요? 어땠어요? 재미있었죠? 언제 봤어요?
학생들 : .......


무엇을 물어도 '네' 또는 '아니요' 그리고 끝. 눈이라도 마주쳐주면 다행이고 그마저 없는 반도 있다. 나는 그들을 '양반'이라고 부르거나 MBTI에서 'I 성향들만 모인 반' 또는 '침묵의 반'이라고 부른다. 이런 학생들이 모인 반은 말하기 연습 시간에 퍽 난감하다. 문법을 가르치건 읽기를 가르치건 듣기를 가르치건 쓰기를 가르치건, 결국 가르친다는 건 교수자와 학습자와의 교감인데 통 무슨 생각인지 내 말을 듣고 있기는 한지 아니 내 말이 들리기는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온라인 수업 중 침묵의 반을 만났을 때는, 내가 댓글 쓰기가 막혀 있는 일방향 유튜브 방송을 하는 게 아닌가 심각하게 좌절한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친구를 만나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이번 학기 '침묵의 반'을 만났다고. 월요일 아침 아이스브레이킹이 전혀 안 된다고. 나 혼자 말하려니까 목이 쉰다고. 그때 내 친구가 한 말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대답은 내가 하는 거지!
질문도 내가, 대답도 내가!


하하하하하. 그렇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래도 너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엎드려 자진 않지 않냐고, 날 위로해 주었다.




자연의 섭리로, 한 학기 침묵의 반을 만나면 다음 학기에는 시끄러운 반을 만나는 행운이 주어진다. 말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은 반. 학교에서는 국적과 나이와 성별 등 모든 프로필들을 고르게 섞어 한 반을 만드는데, 이상하게 어떤 반은 사각사각 글씨 쓰는 소리까지 들리고 어떤 반은 시장통처럼 시끄럽다. 그런 반을 만나면 목은 아프지만 하루하루 에너지가 넘친다. 나는 똑같은 질문을 하는데 학생들의 반응은 남다르다.


나 : 여러분, 주말 잘 보냈어요? 주말에 뭐 했어요?
학생 1 : 홍대에 갔어요. 홍대에서 지난 학기 같은 반 친구들을 만나서 유명한 와인 바 #@$%%^
학생 2 : 부산에 갔다 왔어요. 바다가 너무 멋있었어요. 진짜 @#$%^&*
학생 3 : 집에서 파티했어요. 영화도 보고 고향 음식도 만들고 @#$%^&
학생 4,5,6 : @#$%^&*()
나 : 여러분....... 한 명씩 이야기하세요!!!!!!!


한국어로 말하고 싶어 아우성치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너무 사랑스럽다. 보통 한 모임 안에 말 많은 사람이 두 명 이상이면 대화가 집중이 안 되고 서로 자기 얘기만 하고 뭐가 뭔지 시끄럽고 정신없다. 그런데 한국어 교실에서는 말 많은 사람이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고 교사에게 사랑도 받는다. 말을 배우러 왔기 때문에, 학생들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사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말을 빨리 많이 배운다.


나는 하나의 질문만 했을 뿐인데, 서로서로 아우성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고, 교사가 자기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더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한 번은 MBTI의 E 성향을 가진 학생들이 가득한 반에 I 성향을 가진 학생이 딱 한 명 있었다. 그 학생이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교실이 너무 시끄러워서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그때 우리는 모두 말하기 연습 중이었고, 2명씩 짝을 지어 그야말로 신나게! 연습 중이었다.


매 수업을 마치며 나는 그날의 목표 문법을 활용해 마지막 질문을 한다. 그리고 정답을 눈치챈 학생들은 목청껏 소리 높여 대답한다. 크게 말해야 하고 틀리면 안 되니까 약간 긴장해서는 마치 AI처럼, 마치 우리 집에 있는 밥솥처럼, 한 단어 한 단어 힘주어 대답한다.


그럼 나는 크게 만족해하며 학생들을 놀린다.

"여러분 로봇 같아요. 하지만 잘했으니까, 오늘도 A+"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