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나는 속으로 '헉'.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흐르는 걸 느꼈다. 우리는 유학 생활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왜 한국어를 배우는지', '어떻게 집을 구했는지', '왜 이 학교를 선택했는지' 등 우리가 지금 여기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이유와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기에, 학생이 나에게 물은 질문이 수업 맥락에 안 맞는 영 딴소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는 성인 학습자이기 때문에, 예의 없이 들린다거나 못 물을 질문도 아니었다.
캠퍼스가 예쁘다거나 비밀이라거나 하는 웃기는 대답을 할 수도 있었고, 나도 잘 모르겠다고 영혼 없는 대답을 할 수도 있었다. 근무환경과 근무조건이 어쩌고 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예외. 몇 초간 우왕좌왕하다가 비로소 영혼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하나만 말할 수는 없지만...."으로 시작. 학생이 만족할 만한 대답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학생들이 훅 들어온다 싶은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선생님, 왜 경기도에 사세요?" (내가 일하는 학교는 서울에 있으므로)
"선생님, 몇 급을 가르칠 때 제일 좋으세요?" (이런 질문은 사실 나만의 대답 매뉴얼이 있다.)
"선생님, 한국어를 가르치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어요?" (앗, 한국어 교사가 내 인생 두 번째 직업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어디서 들켰지.)
이런 질문은 '취미가 뭐예요?' '아이돌 누구 좋아하세요?" 하고는 다른 류의 질문이다.
항상 프리토킹의 주체는 학생이고, '왜 내가 지금 여기, 이 교실에 와 있는지' 설명의 주체도 학생이다. 그래서 교사는 교사의 말을 할 필요도, 자리도 없다. 하지만 가르치는 일도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가끔 교사 개인의 삶의 역사를 묻는 학생들이 있다. 상대방이 궁금하다는 의미다. 나는 기본적으로 '관찰자적 시점'이 온전히 세팅돼 있는 사람이다. 만나는 인연들과의 웬만한 에피소드들은 다 기억한다. 그냥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온갖 정보들이 줄줄이 꿰어진다. 나는 그러면서 상대방이(특히 학생들이) 나를 궁금해하면 정말 새롭고 신기하다. 하루만 보고 말더라도, 3개월을 보게 되더라도, 더 길게 보게 되더라도, 서로를 궁금해하는 마음은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기능을 궁금해하면 할수록 더 잘 사용하게 되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학생들이 나에게 한국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냥 질문'을 하고자 할 때, 나는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선생님, 이건 공부 아니고 그냥 다른 질문인데요...."로 시작하는 카톡. 괜찮다. 과연 무슨 질문을 하려고 이렇게 조심스럽게 시작하나, 기대되기도 한다. 한국어 문법이나 단어가 아니라 도대체 뭐 길래. 그 의외성.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