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에 르네상스가 올 건가 봐

찬란하게

by Agnes

남편과 나는 딱 40대 중반이다.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와 아빠는 청년의 끝자락이라서'라고 말하니 중학생 아이가 어이없다며 어떻게 40대 중반이 청년기냐고, 한국어 선생님이 단어 뜻 모르냐고, 혀를 끌끌 차며 놀렸다. 맞다. 40대 중반은 인간의 발달 단계상 장년기 또는 중년기다. 청/장년기라고 우겨 볼까 했는데, 너무 얼토당토않은 것을 우기는 것 같아서 포기했다.


요즘 우리는 부부가 둘 다 바쁘다.

해외 출장은 잦아도 야근은 적은 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얼마 전 (나이에 맞게) 팀장이 됐고 그래서 월화수목금 퇴근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 나는 출장도 없고 야근도 회식도 없는 곳에서 일하지만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이 상당하고 집에 와서도 일을 해야 하고 또 이상하게 요즘 이것저것 일이 많다. 그리고 남편의 야근이 잦아질수록 둘이 하던 집안 일과 육아와(아이는 아니지만 이를테면 밤 시간 학원 라이딩이라던가) 집안의 대소사를 내가 모두 챙겨야 하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고단하다.


팬데믹 동안 비교적 단란하고 정신 있는 삶을 살았던 남편은, 이렇게 봇물 터지듯 밀려드는 바쁜 일상이 마땅치 않은 눈치다. 그리고 나도 조금은 그렇다. 30대에 우리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하루 중 둘이 눈 마주치는 시간이 1시간이 채 안 됐다. 집에 쌀 떨어지는지 모르고 살았고 집에서 밥 해 먹는 날이 거의 없었다. 우리 집 냉장고와 세탁기가 아직도 잘 건재하는 이유는, 일을 별로 안 시켜서다. 30대 후반이 되면서 접을 건 접고 만족할 건 만족하고 안 될 일은 욕심부리지 않고 그렇게 살기 시작하니 우리 둘 다 많이 편해졌다. 그래서 이렇게 40대 중반에 브런치에 글도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남편은 15년 후 정년을 맞이하고, 나는 다가올 50대를 준비하고,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왠지 남편이 점점 더 바빠지고 다이내믹한 인생 후반부를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시그널이 자꾸 온다.


출근길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 우리 인생에 르네상스가 올 건가 봐


남편은 무슨 소리냐고, 나는 우리가 이렇게 바빠지는 걸 보니 르네상스가 올 건가 보다고, 기대하라고.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나는 내가 그 말을 뱉은 그 순간부터 진짜 믿고 있다. 20대와 30대에 뭣도 모르고 흘려보냈던 그 청춘 말고, 노년에 접어들기 전 다시 한번 무언가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뭔가 숨겨진 기분 좋은 이벤트가 우리에게, 오고 있다고. 소싯적에 자주 했던 그 주문, 시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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