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으로 풍덩

빠져버렸어요

by Agnes
나는 INFJ인데, 내 친구 로리도 INFJ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격이 잘 맞는다......


세상에, 외국인 학생의 한국어 에세이에도 이제 MBTI가 등장한다. MBTI가 정말 대세이긴 대세인가 보다. 알파벳으로 썼으니까 이게 MBTI인걸 바로 알았지, 학생들끼리 대화할 때 들어보면 대체 이게 내가 아는 그걸 말하는 게 맞나 싶다. 한 번은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대화하는 걸 들어보니 '인프피 인프피' 어쩌고 한다. '아, 저건 내가 아는 그 인프피(INFP)!?'. 선생님들끼리 만나도 MBTI 얘기가 나오면 대화가 끝나질 않으니까, 학생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생각한다. 이렇게나 학생들이 한국 속으로 풍덩, 빠져있구나.




(손 모양을 지으며) 이건 세모, 이건 네모, 이건 동그라미...

나는 여기까지 설명했는데

선생님. 동글동글 동그라미? 우영우? 기러기 토마토??


나도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팬이다. 나도 요즘 우영우에 푹 빠져서, '기러기 토마토 역삼역'을, '권모술수 권민우'를, '우당탕탕 우영우'를 온갖 문장에 섞어 말하며 다닌다. 그런데 (사실) 발음도 어눌한 학생들이 기러기 토마토를 말하다니.


여러분도 우영우 봐요? 기러기 토마토 역삼역...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나머지는 학생들이 완성. 인도인, 별똥별까지. '인도인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 '몰라요' '별똥별이 뭔지 알아요?' '몰라요' 하지만 하하호호 즐겁다. 이렇게 속속들이 내가 보는 드라마로도 학생들과 말이 통한다니, 한국은 세계의 중심이다.


학생들이 10년 뒤 일하고 싶은 한국 회사에 와이쥐와 제이와이피와 에스엠이 등장한지는 옛날이고, 편의점 커피는 항상 '투플'만 고르고, 아침에는 쿠팡 로켓 배송으로 식재료를 받는다. 한시 반은 읽을 줄 몰라도 치킨 '양념 반 후라이드 반' 말할 때 그 '반'이라 하면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리고 한국은 화장실에 지갑을 놓고 와도 다시 가서 찾으면 될 일이라며, 한국 사람들은 아무것도 자기 것이 아니라면 안 가져간다며 한국사람들을 무한 신뢰한다.




물론, 나에게 들리지 않는 많은 이야기 중, 뼈 아픈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한국의 뼈 아픈 이야기를 외국인이 한국어 선생님인 나에게 굳이 말하지는 않을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은 '한국이 싫어서' 이민을 가는 이야기가 소설로 나오는 나라이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르포 에세이로 나오는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잘 안다.


수많은 절망이 한국 속에 퍼져있지만, 하지만 한국어를 가르칠 때 나는, 한국 속의 희망을 본다. 거기에 항상 기대어, 내 아이가 자랄 한국은 내가 자란 한국보다는 나을 거라고, 한번 믿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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