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별명은

그리운 산티아고스트

by Agnes

한글을 가르친 후 우리는 가끔 학생들에게 한글 이름을 지어 준다. 선생님이 그 친구 이미지에 맞는 이름을 지어 주기도 하고 학생 본인이 짓기도 한다. 그래서 학생들의 새 이름은 그즈음 인기를 끄는 배우나 아이돌 이름이 되기도 하고, 한국인 이름 중에서도 학생의 기억에 오래 남던(갖고 싶었던) 그리고 발음이 예쁜 요즘 이름이 되기도 한다. 이름을 만든 후에는 당연히 한동안 불러줘야 하는데, 그래서 한동안은 반 칠판 한 켠에 공유가, 현빈이, 윤아가 쓰여 있다.




나는 이름을 지어 주기보다는 별명을 지어 주는 부류다. 한글을 배우는 완전 초급이 아니라면 이름 앞에 '호'처럼, 멋진 별명을 붙여 주면 학생들도 무척 즐거워한다. 1세대 아이돌 이름을 빌리자면 '유노 윤호', '최강 창민' 이런 식이다. 그해 겨울에 만난 학생들도 그랬다. 코로나가 등장했던 2019년~2020년 겨울에 만난 학생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초급도 아니었는데 왜 내가 그런 이름들을 붙여 주고 다 같이 불러 주고 그랬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그해 겨울의 학생들 생각이 참 많이 난다는 거다.


학기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많이 슬퍼하고 많이 울던 아랍 소녀 레아. 사실 자녀가 여럿 있는 엄마인 그녀를 소녀라 할 순 없겠지만, 히잡을 쓴 그녀는 눈이 말갰고 학습 능력이 뛰어났고 정말 마음이 소녀 같았다.


코로나가 너무 정말 진짜 무섭다던 인도네시아 지나. 지금은 한국어를 배우지만 언젠가 나중에는 조선어(북한 말)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해 준 설명에 의하면 인도네시아는 북한과도 교류가 잦은데, 나중에 언젠가는 조선어도 배워 북한과의 비즈니스를 꿈꾸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항상 유창하지만 2% 부족한 한국어로 우리를 즐겁게 했던 대만의 만만. 이름이 만만이라 부를 때마다 유쾌한 웃음이 났다. 정말 밝고 맑은 학생이었는데 수료식 날 사진 찍을 때 다들 립스틱 좀 바르고 다시 찍자며, 마스크 덕분에 빠르게 노메이크업이 익숙해지던 우리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그 친구, 내가 이 글을 쓰게 만든 그리운 산티아고스트. 이름은 산티아고였는데 그 친구에게 나는 '산티아고+고스트=산티아고스트'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슥 사라지고 슥 일어나고 슥 소리 없이 앉았기 때문에 그렇게 지어줬는데, 나는 지금도 쉬는 시간에 산티아고스트랑 학생들이 bts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던 걸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영상은 아직도 내 휴대폰 속에 저장돼 있다.




언젠가 산티아고스트가 그 겨울 우리 반 단톡을 찾아 메시지를 남긴 적이 있다.


여러분, 잘 지내요? 나는 MBA를 준비하고 있어요. 한국에 다시 왔어요.


긴 코로나, 긴 비대면에 지쳐있던 우리는 환호했고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그리워하는지 고백했다. 이름이란 부모님이 정해주신 거여서 그 사람의 인생과 전혀 관련이 없다. 하지만 별명은 주위 사람들이 그 사람과 살면서 그 사람을 관찰하면서 그 사람을 떠올리며 다 같이 만들어 주는 거여서, 옷으로 하자면 맞춤옷이다.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고, 이름은 기억이 안 나도 별명은 늦게까지 기억이 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다시 기쁘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딱 어울리는, 그들만의 별명을 만들어 줘야겠다. 그들 하나하나를 오랫동안 내가, 서로가, 기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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