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제일 맛있었던 카레

만들어 주는 기쁨, 선물

by Agnes

요리를 한다고 했다.

요즘은 치킨 집에서 닭을 튀기고 서빙하지만, 본래 직업은 요리사라고 했다. 집에서 매일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 보는 중인데, 한국음식도 아주 잘한다고 했다. 친구들이 농담으로 "우리 언제 요리해 줄 거야?"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흘려듣지 않고 언젠가 해 주고 싶었나 보다. 오늘, 요리사 학생이 카레를 가져왔다.


카레를 어떻게 가져왔을까?


"선생님 것도 있어요."라고 말하면서 교탁에 무심히 툭 던진다. 비닐백에 소분해서 한 덩어리씩 얼린 다음, 녹으면서 물이 생길 것을 고려했는지 까만 봉지에 다시 한번씩 담아왔다. 무려 15개다.

집에 와서 먹어 보니 딱 1인분 분량인데 고기도 야채도 알맞게 들어있고 정말 맛있다. 15인분 분량은 나도 요리해 본 적이 없는데, 반 친구들을 생각하며 이 많은 분량을 만들었을 생각을 하니 너무 기특했다. 저녁 아르바이트 끝내고 난 늦은 시각에, 친구들을 생각하며 밤 12시 카레를 끓이다니, 예쁜 청춘이다.




처음 한국어 교사가 됐을 때는 집에서 뭔가 사부작사부작 많이 만들었다. 이름표도 만들고 언어 별 주의사항도 만들고, 마지막 날 수료식에는 꼭 손글씨 엽서를 써 줬다. 쓸 때 한국어 난이도는 꼭 현재보다 한 단계 어렵게 썼다. 지금 말고 조금 더 한국어를 배우고 나서 읽어 보라고, 좀 간지러운 말들도 얹어서(지금은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니 부끄러움이 아직 나의 몫이 아닐 테니까).


그런 일들을 줄이게 된 데에는 내가 점점 만남과 헤어짐에 무뎌진 탓도 있겠지만, 어쩐지 내가 쿨하지 않은 선생님으로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10주, 그게 뭐라고. 이렇게 잔정을 흘리고 부담스러울지도 모르는 (흔적이 남는) 선물을 주겠다고 이러나, 싶었다.

그리고 코로나로 2년이 훌쩍 사라지고, 며칠 전 오랜만에 엽서를 써 봤다. 이런저런 이유로 조기 귀국하게 된 학생에게 또 옛날 레퍼토리를 읊으며, 지구 반대편에서 행복하라고, 우리 각자 부디 잘 살자고. 그리고 우리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만나자고.

말하며 커다란 학생을 안아 주었더니... 눈물 바람이 되었다. (이번 학기는 여러모로 슬픈 일들이 많았기에 우리는 종종 눈물 바람이 된다.) 그래, 마음껏 충분히 슬퍼하자. 해봤자 눈밖에 더 붓겠니.


어차피 이번 생은 만만한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은 김에, 질척대는 선생님도 돼볼까 싶다.

나는 클래식한 걸 좋아하고 아날로그 한 걸 섬기는 오래된 선생님이니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무엇이든지 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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