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애도라는 것이 있을까.
애도란 뭘까. 사전에 찾아보니 <애도(哀悼) :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다>라고 나온다.
나는 아직, 더 애도하지 못함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나는 어른이고 그러므로 책임이 있고 청년과 아이들을 예뻐하는 연장자이기 때문이다. 예쁘고 귀하다면 소중히 다뤄야 하는데,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대리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한 교육을 들었다. 강사는 우리에게, 되도록 나를 위해 관련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아야 하고 그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뉴스를 반복해서 보지 말고, SNS에 사건 관련 언급도 당연히 피하라 했다. 그 어떤 행동으로도 이 슬픔이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참사를 반복해서 말한다. 담소는 아니다. 다만 떠오르는 것을 반복적으로 말한다. 말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고 그만큼 현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더 어렸을 때, 나는 '쓸데없는 말'을 제일 싫어했다. 필요하지 않은 말, 반복되는 말, 들으면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 말, 그런 말들. 하지만 이제 나는 '쓸데없이 하는 말'의 가치를 안다. 말이라도. 말이라도 해야만 하는 기분을 안다. 부질없지만 울기라도, 듣고 듣고 또 들은 말이지만 다시 한번 말이라도, 들어주기라도.
만약 우리가 평생 애도해야 한다면, 평생 애도하여 무언가 나아지는 것이 있다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할 텐데. 나의 애도가 어디에 쓰임이 있을지 자신이 없다.
대리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겪는 트라우마. 타인에 대한 공감은 사회를 더 나아지게 한다고 배웠는데, 대리 트라우마로 인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얼까. 우리 모두가 잊지 않고 각성하여 진취적으로 살기로 약속한다면, 우리가 느낄 만큼의 속도로 이 세상이 나아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