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그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새 책이 나왔다. 나는 이 책이 나왔을 때, 한국어 번역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미국판 영어본을 샀을 만큼 그녀가 좋다. 본격적으로 읽지는 못했고, 어물거리는 사이 한국어본이 나왔다. 그녀의 베스트셀러 <올리브 키터리지>가 HBO 드라마로 제작된 것을 알았을 때에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OTT 서비스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불법적인 방법을 알아보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본 살아 있는 올리브,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정말이지 내가 상상한 올리브랑 똑같았다.
<오, 윌리엄>에는 그녀의 전작에서 주인공이었던 루시 바턴이 다시 나오는데, 작가인 그녀에게 소설 속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 "내 얘기로 책을 쓴다면, 나도 등장하고 싶어요." 작가의 이야기 속 세계를 바라보던 누군가가 작가를 만났을 때 이런 말을 건넨다면, 그 작가는 진심으로 위로받을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이 세상이 신나고 기쁘지만은 않다는 뜻일 테고, 그러므로 자신의 글 속에 등장하고픈 사람을 발견한다는 건 위안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건 작가의 입장이고, 책 속 등장인물이 되고 싶은 독자의 마음이란 바라만 봐 온 세계 속에 들어가고 싶은 열망이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냐면, 내 글 속에 내 학생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 정확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지나간 일들의 조합인 경우가 많다. 하나의 주제로 5년 전 이야기와 3년 전 이야기를 둘 다 언급하는 식이다. 그리고 근래의 이야기를 쓸 때에는 개인정보라 여겨지거나 이야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정보는 최대한 언급하지 않는다. 다양한 국적과 문화의 학생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편견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확실한 건,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그건 내 글에 등장하는 그들에 대한 나만의 예의다. 내가 정식 작가는 아니지만, 유명한 블로거는 아니지만, 그렇게 내 글 속 학생들에 대한 내 입장을 정했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내가 학생들의 이야기를 쓰는 걸 학생들이 알게 되는 상상. 그때 만약 내가 이런 말을 들으려면("선생님의 글 속 등장인물이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으려면) 그러려면 학생들이 내 글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상상이 잘 되지를 않는다. 내 글을 읽을 만큼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별로 없다. 한국어 학습자 집단은 피라미드 구조여서, 초급이 아랫부분이고 고급이 윗부분이다. 대부분의 학습자는 초급(1,2급)에 몰려 있고 위로 갈수록 희귀해진다. 그러므로 아무리 베스트셀러 작가여도 학생이 교사의 책을 찾아 읽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건 합리적인 추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어려움을 제치고 여러 가지 우연이 발생하여 학생들이 내 글을 만약 본다면, 그렇다면. 아..... 너무나 부끄럽다. 나는 수업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동료 교사는 또 어떻게 볼 것인가. 내가 학교에 어떠한 누를 끼치지 않을까 매 순간 내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스스로 검열을 거치진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상만으로도 이러한데,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지는 것을 느끼는데, 많은 작가님들은, 많은 글을 쓰는 분들은, 이런 작가로서의 무게감을 대체 어떻게 견디는 걸까. 나는 상상조차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잊을 뻔한 가장 중요한 것, 내 학생들은 내 글 속 등장인물이 되고 싶을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