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할 때 직업이 선생님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특히 가을 겨울에 그렇다. 아마 내가 재킷에 스커트 입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옷가게 직원에게 혹시 직업이 국어 선생님이냐고, 콕 집어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오랫동안 포멀한 옷차림을 중시하는 직장에 다녀서인지, 내 옷장에는 청바지와 티셔츠는 없어도 정장 스커트와 재킷은 계절 별로 들어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옷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면바지를 하나 사면, 면바지에 입을 티셔츠와 거기에 신을 운동화를 사야 하는데 그러자면 지금의 옷장을 싹 다 갈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수료식 날, 내 롤링 페이퍼에 학생이 적어 준 덕담
동료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학생 휴게실에 앉아 있으니 학생 한 명이 와서 (학생인 줄 알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말을 걸었다던데, 내 복장으로는 어림없다. 아마, 선생님이 왜 여기서 쉬고 있나, 다들 흘끔 속닥 거렸을 거다. 실제로 개강 날 복도마다 그렇게나 많은 선생님이 돌아다니는데 나를 콕 붙잡고 '선생님!' 하며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꼭 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내 행색이 약간은 고루해 보이나 보다(라고 쓰고 취향이 클래식하다고 나 혼자 생각한다).
신발은, 나는 어그 부츠는 신지 않는다. 언젠가 학생들의 에세이를 봐주고 있었는데, 심하게 폭신한 어그부츠가 발소리마저 무음으로 만들어 내가 다가갔을 때 화들짝 놀라는 것을 본 뒤부터다. 모름지기 선생님은 학생에게 다가갈 때, 기척을 내야 한다.
지난 학기에는 왠지 모르게 내가 항상 구두를 신고 다녔다. 높은 구두는 아니고 3cm 정도의 낮은 구두인데 발소리가 또각또각 났다. 요즘은 구두를 신는 선생님들이 많지 않다. 스커트에도 운동화를 신는 게 요즘 트렌드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굳이 구두를 신으라는 드레스코드를 주지도 않아서다. 그런데 내가 유독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구두를 신고 다니니, 우리 반 학생들은 내가 오는 것을 소리로 예고 받는다고 했다. 멀리서부터 또각또각(무려 아래층부터) 소리가 들려오면(계단 바로 옆 교실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오고 있다" 말하고 순간 "정지" 한 다음에 내가 등장하면 다 같이 "와~" 웃는 식이었다.
내 구두가 학생들에게 이런 재미를 주다니, 뜻밖의 행운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어느 날은 내 원피스를 보고 동료 선생님이 개화기 신여성처럼 예쁘다며 칭찬해 주었다. 그날은 참 기분이 좋았다. 개화기 신여성이라는 단어를 듣고 나는 미스터 선샤인에 나오는 세련된 김민정 배우를 상상했다. 난 긍정적인 사람이다.
옷에 대한 에피소드는 정말이지 무궁무진하다. 급기야 지난 학기에는 정말 수줍어 질문을 하려면 일단 목소리부터 떨렸던 학생 한 명이, 꼭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뭐냐고 했더니 선생님이 어제 입고 온 원피스와 그저께 입고 온 모자티 브랜드를 알려 달라고 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자기도 꼭 사야겠다고...... 정말 알려 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 코로나 와중에 손님이 줄어 내 단골 옷가게가 문을 닫아 버리는 바람에 알려주지 못했다.
나는 스타일리시한 사람은 절대 아니다. 젊지도 않고 옷발이 좋지도 않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비싼 옷은 살 돈도 없고 배포도 없다. 아마 옷맵시가 좋았다면 월급의 상당량을 옷값으로 탕진했을 테니 다행이기도 하다. 하지만 옛날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옷과 신발의 가짓수가 많고 정성껏 관리한다. 특히 구두는 아이가 말하길, "엄마는 개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신발이 많지?"라고 할 정도로 많고 10년이 훌쩍 넘은 신발도 정성껏 관리한다. 어쨌든 이런 내 취미가 예상치 않게 학생들에게 기쁨이 되나 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끔 그런 일이 생기니 나도 즐겁고 학생들도 즐겁고, 일석이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