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료들

천직인 듯 이방인인 듯

by Agnes

나의 동료들은 종종 책을 돌려 보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소설 파친코는 내가 초판을 산 이후 현재까지 무려 10여 명의 선생님들이 돌려 읽고 있는데, 다음 대출 예약자가 있을 정도다. 책이 2권으로 구성돼 있고 꽤 두꺼운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책에 매우 진심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코리안 티처'가 나왔을 때에도, 순서를 정해가며 돌려 읽고 한동안 그 소설의 목차와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코리안 티처 작가님의 두 번째 소설이 나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테니스 동호회라거나 캠핑 동호회라거나 직장 동료들끼리 하는 여러 모임들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딱히 독서 모임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서로서로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책을 돌려 읽는다는 건 흔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요즘 세상에 굳이 책을 들고 와서 빌려주고, 빌린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은 모두 서로의 정성이 있기에 가능하다. (한)국어 선생님이라고 해서 모두 책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한국어 선생님들과 함께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독 브런치에 국어 교사가 많다는 이웃 작가님의 글을 얼마 전 읽었다. 문득 훑어보니, 내 브런치의 구독자님들과 내가 구독한 브런치의 작가님들도 이런저런 가르치는 일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읽거나 쓰는 걸(또는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세계에서, 다시 비슷한 세계관이 만들어지나 보다.


어학당에서 대선배급 나이지만 저 경력 강사인 나는, 종종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내 인식은 아직도 신입인데 뒤돌아 보니 내가 이 학교에 입사한 지 7년 차다. 나는 여기에서 천직인 듯 이방인인 듯, 그렇게 살고 있다. 태초부터 한국어 교사가 내 직업이었던 양 즐겁게 가르치고 있지만, 나는 동료들과 태생이 다르다는 생각을 아직도 종종 한다.




회사 다닐 때, 동료와 함께 있는 시간을 계산해 본 적이 있다. 하루 12시간X5일=60시간. 60시간X4주=240시간. 240시간X12개월=........ 어마어마한 날들. 주 5일 팀원들과 모든 점심을 함께 먹고, 종종 저녁과 야식도. 게다가 종종 휴일도 함께. 그 무렵 신혼이었던 나는 남편과 함께하는 식사보다 동료들과 함께하는 식사 횟수가 많았고 얼굴 보는 시간이 길었다. 당시에 Office wife, Office husband가 유행처럼 생겨났는데, 나는 그런 단어가 생긴 것도 무리는 아니라 생각했다. 남편은 하루에 길어야 고작 2시간 얼굴 보고 자는데, 동료는 최소 12시간을 함께 지지고 볶고 서로 미워하고 정들고 그러니 당연한 일일 수밖에(주 52시간 노동이 의무화되면서, 이제 12시간 넘게 동료를 매일 보는 일은 없어졌다고 한다).


그에 비해 어학당에 와서 만난 동료들은 함께 하는 시간이 매우 적었다. 기본적으로 서로 수업 들어가 있는 시간이 매우 길었고, 자리 이동이나 담당 수업의 변경도 잦았다. 당연히 소수의 특정 사람들과 길게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리고 협업의 양과 질이 일반 회사와는 매우 달랐다.




You are what you eat. 우리 집 냉장고 앞에 붙어 있는 글귀. 40년 넘게 살면서 내가 먹는 것이 곧 나의 몸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항상 상기했다. 그런데 요즘 나의 생각은 이렇다. 나의 직업과 내가 만난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사실이다. 중년이 되면 본인의 얼굴에 책임져야 하듯이, 40이 넘은 지금의 날 만들어 낸 것은 그동안 내가 만난 사람과 내가 겪은 일이다. 그중 직장 동료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직장 동료들끼리 서로를 이해하고 같은 지점에서 웃는 것은 인생 서사가 비슷해서이다. 한 집단 안에서 비슷한 서사를 겪는다는 것은 얼마나 운명적인지. 동료가 되는 것은 비슷한 인생 서사를 갖는 것이다.

내가 작은 수술로 병가를 쓴 후 복직했을 때, 많은 동료 선생님들이 나를 찾아와 이런저런 덕담과 위로를 해 주었다. 그리웠던 이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아, 나는 환대를 받고 있구나', '내가 참 좋은 곳에 있구나', '나는 이들과 인생의 한 부분을 같이 쓰고 있구나' 생각했다.

비록 태초부터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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