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K드라마, K푸드로 환상을 만들어, 한국어를 배우게 만들어, 이 위험한 나라에 학생들을 불러들여, 이렇게 되고야 말았다.
등굣길 인파가 몰리면 이태원 그날이 떠올라 패닉이 되고, 언제 어느 때고 갑자기 과호흡이 와서 119를 부르고, 복도 곳곳에 서서 울고 위로하고. 추모식이 있던 날, 나는 하느님께 물었다. 도대체 얼마나 큰 선물을 그곳에서 주시려고 이렇게 꽃 같은 학생들을 일찍 데려가셨나요. 궁금해하지 않을 테니, 부디 선물을 주세요.
기승전 그날, 10월 29일.
크리스마스트리가 멋져 손님이 몰려든다는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을 찾았다. 꼭대기 층에서 내려다보니 과연 장관이었다. 입장을 위해 순서를 기다리면서 위에서 내려다보니 사람이 많다. 순간 망설였다. 나는 그냥 여기서 내려다볼 테니 일행들에게 보고 오라고 말할까 말까. 내가 이곳을 보고 그날을 떠올리다니. 대리 트라우마 대상 군이라고는 하나, 나는 일부러 사진도 영상도 보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고, 내가 나를 잘 알아서 보지 않았다. 그런데 순간 그날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방문한 동네 도서관에서 백희나 작가님의 책 <연이와 버들 도령>을 읽었다. 버들 도령은 나쁜 할머니로 인해 죽는다. 하지만 연이가 버들 도령에게 받았던 살살이, 숨살이, 피살이 꽃을 곁에 내려놓자 버들 도령은 다시 살아났다. 무지개를 타고 연이와 버들 도령은 하늘로 가고, 작가가 말한다. 그곳에서 행복하라고, 무탈하게 지내라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도서관 안에서 갑자기 울었다. 청춘들이 생각났다. 우리 어학당의 학생들이 생각났다. 이런 방법은, 없겠지.
내가 뭐라고 이렇게 문득문득 그날을 떠올리나. 내가 이러하다면 가까운 이를 잃은 사람들은 대체 어떤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건가.나는 가늠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