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도 히터도 필요 없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by Agnes

나에게 있어 세계는 두 개로 나뉜다.


내가 한국어를 가르쳐 본 나라, 아직 안 가르쳐 본 나라. 가르쳐 본 적 없는 새로운 국적의 학생을 배정받으면, 그때부터 그 나라가 내 세계 속으로 들어와서 구글 지도를 찾아보고 언어와 종교와 날씨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내 세계는 약간 편협하다고 하겠다.




직업이 한국어 교사이다 보니, 지구촌 곳곳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나도 매일 수시로 세계 뉴스를 검색해 본다. 대만에는 지진이 났고 독일은 이상 기온으로 지나치게 덥고 미국은 대선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등등 날씨 얘기부터 각종 사건 사고 이야기, 올림픽 얘기까지 모두 기사 제목이라도 훑는다. OO 씨 나라에는 지금 비가 너무 많이 왔다는데,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괜찮아요? OO 씨 나라는 요즘 너무 덥다면서요? 등등. 학생들의 안부만큼이나 학생의 고향의 안부도 종종 묻는다. 몸은 여기 한국에 있지만, 온 신경이 고향에 가 있을 만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꼭 한 마디 안부를 나눈다. 너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가 아주 조금은 안다고, 그러니 외로워하지 말라고. 여기도 사람 사는 나라라고.


국적을 들으면 대부분 틀림없이 유추할 수 있는 정보들이 있다. 가령 홍콩은 너무 덥지요, 러시아는 진짜 진짜 춥지요. 프랑스는 정말 빵이 그렇게나 맛있나요? 등등. 하지만 아주 의외의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다. 상상조차 못 한 상황.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상식'에서 너무나 벗어나는 경우.


한 학생의 에세이를 첨삭하다 발견한 사실인데, 영국의 가정집에는 보통 에어컨도 히터도 없다(고 한다). 날씨가 연중 사람이 살기에 딱 적당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더운 나라는 당연히 집에 에어컨만 있을 테고 추운 나라는 당연히 집에 히터만 있을 거라는 정도는 상상 가능하다. 그런데 어떤 냉난방도 필요 없을 만큼 연중 딱 날씨가 적당한 나라가 있다니. 그 나라 사람들은 사계절 신경 쓸 게 무얼까. 우리는 여름엔 여름옷이, 겨울엔 겨울 옷이 필요하고. 냉난방기는 기본이고 더울 땐 제습기가 추울 땐 가습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실, 너무 더울 때와 너무 추울 때는 냉난방 시설이 없다면 생존이 어렵다. 냉난방기가 없으면 생존이 어려운 우리와 냉난방기가 없어도 별로 문제가 없는 곳에서 사는 그들은, 모든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겠구나.


섬나라에서 온 학생이 있었다. 그 나라는 작은 섬의 연합으로 이루어졌는데 접근도 어렵고 발전이 더딘 나라다. 학생도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세계에 대한 정보와 관심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 학생이 한국에 와서 제일 놀란 것이 산이었다고 한다. 고향에는 산이 없어서 등산이란 걸 해 본 적이 없고 폭포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냥 바다와 평지. 바다와 평지만 보고 자란 20대 초반 청년이 산의 존재를 모르고 자랐다는 말을 했을 때, 난 농담을 들은 줄 알았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고,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다고. 그런 말들을 한다. 하지만 사람이 백 명이라면 생각도 백 개다. 게다가 사는 모양 자체가 다르다면-가령 냉난방기가 집에 없는 게 일반적이라면, 전국에 산이 0개라면-생각의 가짓수는 더 다양할 것이다. 본래 다양성이 기본인 세상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가 아닌 남들과 너무나도) 다른 것은 당연하다. 나를 존중하자.


(타인과 어울리는 게 힘들 때, 이렇게 최면을 걸어 본다.)



덧 : 이 글을 쓰려고 '영국 에어컨'으로 검색해 보니, 최근 영국은 이상 기온으로 여름에 너무 더워 힘들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가정집에 에어컨이 없는데, 날씨는 40도를 육박하니... 다들 너무 힘들다고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