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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an 10. 2023

나에게도 동네 책방이 생겼다

<뜻밖의 여행>이라고

나에게도 드디어 동네 책방이 생겼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독립 서점에 꼭 가 본다. 요즘은 독립 서점 지도도 나오고, 북스테이를 겸하는 서점도 많고,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된 서점도 많아서 검색이 어렵지 않다. 독립 서점은 교외에 있는 경우가 많고 외딴곳에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 곳은 주로 차로 여행 다닐 때 들른다. 여행 일정과 경로에 독립 서점을 한 곳쯤 꼭 넣어, 그 지역 냄새가 나는 책을 한두 권 구입한다.


하지만 동네 책방은 이름 그대로 차로 가기 어려운 동네 한복판에 있다. 주차장이 없는 곳도 많고 골목길 사이에 있는 곳도 많다. 서울 시내로 출퇴근하고 있어서 내 일터 근방에도 동네 책방이 많지만 거의 들르지 못하는 이유다. SNS로 하도 많이 봐서 어떤 책방은 이미 가 본 것 같기도 하고, 각 책방의 주력 분야가 무엇인지 꿰고 있지만, 나는 아직 못 가 본 책방이 대다수다. 가끔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온라인 구매로 달래기도 하는데, 동네 책방에서 책을 온라인으로 구매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온라인 서점앱을 이용하면 책이 바람처럼 배송되기 때문이다. 신속 정확 편리를 포기하기란 좀 어렵다.


동네 책방을 가는 이유는 공간이 주는 기쁨도 있지만, 책방 지기님의 북컬렉션을 보고 싶어서다. 독립 서점은 내가 온라인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북컬렉션을 보여준다. 나는 많은 귀한 책을 동네 책방에서 발견했고, 그렇게 산 책은 아직까지도 내 서가에 꽂혀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 정보만 보고 구매한 경우, 대형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비치된 책 중 골라 사 온 경우는, 앞부분만 읽고 덮어버리는 일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나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사는데, 책을 다 읽은 후 언젠가 다시 읽고 싶은 책은 내 서가로 이동하고 읽다 덮은 책은 종종 이용하는 온라인 중고판매숍에 보낸다. 그렇지 않으면 책의 범람으로 거실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SNS에서 내가 사는 동네의 독립 서점을 검색했다. 차로 30-40분 거리에 있는 곳, 1시간 거리에 있는 곳은 발견했지만 딱 우리 동네라 할 곳에는 아직 없었다. 그래도 나는 지치지 않고 주기적으로 계속 검색했다. 언젠간 생기겠지. 작은 책방이라도 생기면 방문해 봤다. 잠깐 생겼다 없어진 곳도 있고, 서점이라기보다는 문화 공간인 곳도 있었다. 그러다 작년 가을 언젠가, 차로 15분 거리에 동네 책방 <뜻밖의 여행>생긴 발견했다.


서점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도 할 수 없지 /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244쪽 중


이제, 동네다운 동네가 되었다.


사실, 동네 책방은 동네를 산책하면서 들를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제맛인데, 거기까진 욕심이고. 나는 차로 15분 거리면 충분하다. 이제 나는 퇴근길 총총 동네 책방에 들를 수 있다. 햇볕이 밝은 주말이나 비가 오는 어느 저녁에도, 오늘은 좀 집에 가기 싫은 그런 날에도, 새로운 책을 발견하고 싶을 때도, 갈 책방이 생겼다. 사실, 그렇게 고대하던 동네 책방에 자주 들르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제 자동차로 책방 옆을 스쳐 지나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저기 내 동네 책방이 있지. 언제든, 나를 반겨줄 책방 지기님이 있지. 모든 것이 그렇듯이, 동네 책방도 향유의 즐거움 못지않게 존재의 즐거움이 핵심이었나 보다.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 와인바가, 쇼핑 좋아하는 사람에게 백화점이, 수영 좋아하는 사람에게 수영장이 생긴 기분이 이런 걸까. 아무튼 이제 우리 동네도, 동네다운 동네가 됐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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