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독립 서점에 꼭 가 본다. 요즘은 독립 서점 지도도 나오고, 북스테이를 겸하는 서점도 많고,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된 서점도 많아서 검색이 어렵지 않다. 독립 서점은 교외에 있는 경우가 많고 외딴곳에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 곳은 주로 차로 여행 다닐 때 들른다. 여행 일정과 경로에 독립 서점을 한 곳쯤 꼭 넣어, 그 지역 냄새가 나는 책을 한두 권 구입한다.
하지만 동네 책방은 이름 그대로 차로 가기 어려운 동네 한복판에 있다. 주차장이 없는 곳도 많고 골목길 사이에 있는 곳도 많다. 서울 시내로 출퇴근하고 있어서 내 일터 근방에도 동네 책방이 많지만 거의 들르지 못하는 이유다. SNS로 하도 많이 봐서 어떤 책방은 이미 가 본 것 같기도 하고, 각 책방의 주력 분야가 무엇인지 꿰고 있지만, 나는 아직 못 가 본 책방이 대다수다. 가끔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온라인 구매로 달래기도 하는데, 동네 책방에서 책을 온라인으로 구매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온라인 서점앱을 이용하면 책이 바람처럼 배송되기 때문이다. 신속 정확 편리를 포기하기란 좀 어렵다.
동네 책방을 가는 이유는 공간이 주는 기쁨도 있지만, 책방 지기님의 북컬렉션을 보고 싶어서다. 독립 서점은 내가 온라인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북컬렉션을 보여준다. 나는 많은 귀한 책을 동네 책방에서 발견했고, 그렇게 산 책은 아직까지도 내 서가에 꽂혀 있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 정보만 보고 구매한 경우, 대형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비치된 책 중 골라 사 온 경우는, 앞부분만 읽고 덮어버리는 일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나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사는데, 책을 다 읽은 후 언젠가 다시 읽고 싶은 책은 내 서가로 이동하고 읽다 덮은 책은 종종 이용하는 온라인 중고판매숍에 보낸다. 그렇지 않으면 책의 범람으로 거실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SNS에서 내가 사는 동네의 독립 서점을 검색했다. 차로 30-40분 거리에 있는 곳, 1시간 거리에 있는 곳은 발견했지만 딱 우리 동네라 할 곳에는 아직 없었다. 그래도 나는 지치지 않고 주기적으로 계속 검색했다. 언젠간 생기겠지.작은 책방이라도 생기면 꼭 방문해 봤다. 잠깐 생겼다 없어진 곳도 있고, 서점이라기보다는문화 공간인 곳도 있었다. 그러다 작년 가을 언젠가, 차로 15분 거리에 동네 책방 <뜻밖의 여행>이 생긴 걸 발견했다.
서점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도 할 수 없지 /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244쪽 중
이제, 동네다운 동네가 되었다.
사실, 동네 책방은 동네를 산책하면서 들를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제맛인데, 거기까진 욕심이고. 나는 차로 15분 거리면 충분하다. 이제 나는 퇴근길 총총 동네 책방에 들를 수 있다. 햇볕이 밝은 주말이나 비가 오는 어느 저녁에도, 오늘은 좀 집에 가기 싫은 그런 날에도, 새로운 책을 발견하고 싶을 때도, 갈 책방이 생겼다. 사실, 그렇게 고대하던 동네 책방에 자주 들르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제 자동차로 책방 옆을 스쳐 지나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저기 내 동네 책방이 있지. 언제든, 나를 반겨줄 책방 지기님이 있지. 모든 것이 그렇듯이, 동네 책방도 향유의 즐거움 못지않게 존재의 즐거움이 핵심이었나 보다.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 와인바가, 쇼핑 좋아하는 사람에게 백화점이, 수영 좋아하는 사람에게 수영장이 생긴 기분이 이런 걸까. 아무튼 이제 우리 동네도, 동네다운 동네가 됐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