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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an 20. 2023

모든 기억이 희미해진다

내 엄마가 돌아가신 나이조차도

남편이 물었다.

엄마, 외할머니는 언제 돌아가셨어?
뭐라고? 누구? 뭔 말이야.

아...... 이제 정말, 귀가 안 들리신다.

어머니가 알아들으시기 쉽게 남편이 다시 말했다.

아니, 엄마, 엄마의 엄마는 언제 죽었냐고

어머니는 잠시 망연한 얼굴이 되셨지만 이내 말하셨다.

내 엄마? 몰러. 몇 살에 죽었는지. 옛날이라 잊어버렸어.




우리는 잠시, 진짜 말을 잃었다. 그 자리에는 아들 며느리가 네 명이나 있었고, 우리는 모두 적지 않은 나이들인데, 내 어머니가 언제 엄마를 잃었는지 전혀 모르고 살았다. 아니 우리 기억에 집안에서 '외할머니'라는 호칭을 입에 올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결혼해서 15년이 넘은 지금까지. 

잠깐의 침묵 후, 아주 어릴 때라 그랬는데 어머니 많이 힘드셨겠다, 그런 이야기를 다시 주고받으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불쑥 이야기하신다.


서른여덟인가, 아홉에 죽었어.
아퍼서 죽었는데, 뭔 병인진 기억이 안 나. 아주 젊어 죽었어.


곰곰 생각해 보았나 보다. 내 엄마가 언제 죽었더라. 아무도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기억이 없는데. 남편도 30년 전에 죽고, 오빠도 5년 전엔가 죽고, 그래서 그런 이야기 나눌 형제들도 이제 없고. 무엇보다 사는 게 바빠 아무도 본인의 엄마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없으니까 답할 기회가 없으셨을 거다.

외할머니가 서른여덟인가 아홉에 돌아가셨다면, 어머니 나이 스물 전이었을 텐데. 그럼 어머닌 엄마 없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러고 사셨구나. 인생의 70%를 엄마 없이 사셨구나. 그러니 엄마란 단어가, 엄마가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생각이 안 나지.


고독한 인생이다. 외롭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런 인생이다. 이제는 아들, 며느리, 사위, 손주, 증손주까지 본인의 가족들이 정말 많은 수로 불어났는데. 이미 가 버린 사람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어쩔 수가 없다. 이럴 때 보면 정말 망각이란, 잊는 능력이란, 참 있어서  다행이다. 잊히지 않았다면 어찌 사셨을까, 가늠할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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