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글에 치이는 날들

한국어 에세이를 읽다가

by Agnes

학생들의 에세이를 첨삭하며 많은 생각들을 읽는다. 그리고 종종, 학생들의 글에 치인다. 감동해서, 재미있어서, 속상해서, 기특해서.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지 않은 학생은 없어요


선생님을 몹시 힘들게 하는 학생이 더러 있다. 문화의 차이는 곧 학교 생활 규칙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는데, 태생이 다른 그들은 많은 한국식 규칙에 순응하지 못한다. 사실 어떤 부분은 문화 차이라 애써 이해해 본 것뿐, 문화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냥 사회성 또는 예의의 문제라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하는 것이 무색하게, 단박에 알아듣고 무리 없이 따라주는 학생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 학생은 나이가 어렸다. 고향의 학제와 한국의 학제가 약간 달라서인지 아니면 한국의 만 나이 제도가 문제인 건지 어쨌든 스무 살이 되려면 아직 먼 나이였다. 학생은 자주 지각했고 수업 중 자리를 비웠고 스마트폰을 보느라 교사의 지시를 못 들었고 학습 단계 별 과제마다마다 "왜 이것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했다. 물론 한국어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친구들과는 불화했고 교사들과는 자주 면담을 해야 했다. 전반적으로 불성실하고 학습 성취도가 낮은 학생. 우리는 그렇게 그를 평가했다. 교사들은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설명을 또 하고 또 하고, 규칙을 알리고 알리고, 어학당에 적응하게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교사들의 정성이 닿은 건지 아니면 시간이 해결해 준 건지, 6개월 후 학생은 많이 규범적이고 단정해져 있었다. 많은 교사들의 고군분투로, 내가 가르칠 때쯤 그 학생은 많이 꺾이고 유순해져 있었다.


어느 날 어떤 기회에, 학생이 고향에 돌아가기 직전,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려주길래 '축하한다'라고 말해줬더니, 봇물 터지듯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마지막 에세이 숙제에 이런 이야기를 써냈다.


"선생님, 저는 나쁜 학생이 아니에요.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지 않은 학생은 없어요.학교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는 건 저도 잘 알아요. 그런데 제가 자주 잘못했어요, 알아요.
그래서 노력했어요. 하지만 선생님들이 가끔 저에게 예의 없는 질문들을 했고, 저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선생님들을 이해해요."

누군들, 주위 사람과 불화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누군들,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저 단 하나의 문장으로 나는 학생이 고군분투한 지난날이 눈에 보이듯 그려졌다. 얼마나 선생님들 속을 끓였을지는 가르치며 이미 느꼈지만, 학생의 저 마음 또한 진정 진심이구나. 다만 자신의 진심을 요령 있고 세련되게 풀어내지 못했을 뿐. 학생도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더 나이가 들면, 그때는 좀 더 사람 사이의 일에 능숙해지겠지.




드라마가 문제다. 드라마를 믿지 맙시다.


학생들은 종종 '한국의 실체 또는 실제'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한국의 여름은 생각보다 너무 덥고, 겨울은 생각보다 너무 춥다. 한국의 지하철은 생각보다 저렴하고, 생각보다 너무 편리하다. 학생들이 많이 말하는 이런저런 '한국의 실체' 이야기에는, 모두 한국 드라마가 엮여 있다. 한국에 오기 전에 드라마를 많이 봤는데......로 시작하는 말들은 대부분 뒤가 상상이 된다. (한국 아이돌과 달리) 길에서 만나는 한국 남자들은 대부분 화장을 하지 않고, 한국 사람들이 사는 집은 (드라마와 달리) 그렇게 넓지 않고, 한국 사람들이 모두 (드라마에서처럼) 신나고 자신 있게 회사를 다니는 것은 아니고 등등. 연애 대상에 관심이 많은 20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사실 더 깊게 들어간다. 드라마 속 한국 남자들은, 여자들은..... 소곤소곤 교사 몰래 하는 이야기까지 합치면 정말이지, 몇 시간이고 끊임없이 이야기할 기세다.


그러더니 결국 에세이에 저 문장을 써서 냈다. '드라마가 문제다. 드라마를 믿지 맙시다.' 첨삭하다 나는 현실 웃음을 터뜨렸는데, 과연 저건 누구 보라고 쓴 건가. 자신만의 다짐인가, 아니면 학생들과 대동단결해 '한국 드라마 주의보'라도 내린 건가.


반대로 한국에 와서 보니 '드라마에서 본 것과 달리 너무 좋다'는 이야기도 더러 (많이는 아니고 더러) 보인다. 한국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은 드라마 때문이라기보다는 사실 현지에서 접하는 미디어의 편향된 시각으로 인한 오해가 많다. 그리고 현지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서 듣는, 한국에 대하여 많이 아는(또는 안다고 여겨지는) 현지인에게서 듣는 잘못된 소문. 그로 인해 한국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까 한국 사람이 매우 외국인에게 친화적이라는 이야기들이다. 이번 학기에 가르치는 학생 중 한 명도 막상 와서 살아보니 한국인이 너무 친절하고 외국인을 환대해 준다며, 이런 곳이라면 오랫동안 잘 살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에세이로 쓴 후 이렇게 마무리했다.


세상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을지도 모른다. 꼭 가서 직접 봐라.


혼자 웃으며 생각한다. 이번 에세이는, 여행사 카피 콘셉트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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