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청춘들은 어디에나 있다

국적을 막론하고

by Agnes

한국어를 배우러 온 학생들은 그 국적만큼이나 모든 것이 다종다양하다. 외모, 입맛, 지갑 사정, 직업 또는 전공.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르다.


내가 처음 한국어를 가르친 곳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었다. 주로 회사원을 가르쳤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많았다. 젊은 영어권 학생들은 영어 선생님이 많았고, 나이가 좀 있는 학생들은 거의 주재원이었다. 그리고 직업이 특별히 없는 여자 학생들은 배우자가 주재원으로 나와 함께 온 가족들이 많았다. 신분이 정확한 그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평범해 보였다. 가난해 보이는 학생은 없었다. '그저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 계획이 그들을 한국에 오게 했기 때문에, 한국어에 대한 열정이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은 대학교 어학당이다. 우리 학교는 학생의 국적 분포가 매우 다양한 편이다. 학습자 분포는 학교마다 다르다. 업계 사람들(?)에게 들어 보면, 특정 국가 학생이 100%인 학교도 있다고 한다. 그런 경우 반 전체 구성원이 하나의 국적이다 보니, 교실에 들어서면 오히려 교사가 외국에 유학 간 기분이 든다고도 했다. 아무튼 우리 학교는 국적이 다양하다 보니, 모든 것이 천차만별이다. 외모와 옷차림뿐 아니라 가지고 다니는 가방부터 학용품까지, 정말 다르다(그 와중에 휴대폰과 이어폰은 모두가 아는 두 개의 회사 제품만 있다는 것은 매우 놀랍다). 그도 그럴 것이, 아시아 학생들은 한국에 겨울에 유학을 오면, 롱패딩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가 그렇게 고민이 된다고 한다. 한국의 추위를 생각하면 사야 하는 것이 맞는데, 도대체 한국을 떠나면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가. 기념으로 가지고 간다고 하더라도, 여행 가방의 반을 차지할 롱패딩을. 가지고 가 봤자 장롱 깊숙이 들어가 자리만 차지할 그것을, 정말 가지고 가는 게 맞는가. 이들은, 인생 서사가 아예 다른 사람들이다.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천차만별은 빈부격차다. 7,8천 원 밥 한 끼 가격을 두 번 세 번 고민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명품인 학생이 있다. 사 먹는 밥은 비싸니까 항상 집에서 밥과 라면과 김치를 먹는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스타일러가 있는 레지던스를 장기 렌털해 사는 학생이 있다. 이러한 경제적 차이는 국적과는 별개다. 부자 동네에도 가난한 사람이 있고 가난한 동네에도 부자가 있듯이, 선진국에도 가난한 학생이 있고 후진국에도 부자가 있으니까.


가끔 학생들의 가난을 구체적으로 듣고 본다.


(야간 아르바이트가) 힘들지만 할 수 없어요. 저는 지금 돈이 없으니까, 이렇게 해야 돼요.
순댓국은 자주 먹지 못해요. 정말 좋아하지만, 돈이 별로 없어요.
다리를 불에 데었는데, 정말 아팠는데, 그냥 집에 있었어요. 병원에 가 봤는데, 치료비가 너무 비쌌어요.


이런 말들. 가끔 불쑥 들어오는 이런 말들을 들으면 나는 좀 어색한 기분이 된다. 가난은 어쨌든 약하고 슬픈 거니까. 그런데 의외로 그런 말을 하는 학생들은 당당하고 씩씩하다. 목소리도 크다. 그들은 가난을 선택하면서 한국에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생을 계획했고, 가난도 그 계획의 일부였던 것이다.

내 청춘을 돌이켜보면 나는 가난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내 꿈을 담보 잡혀 가난해지지는 못했다. 평생 적당히 가난하고 적당히 부유하게 살 것이 예상되어도, 완전히 가난해지지는 않을 삶. 그리고 때때로 재미없을 수 있는 삶. 그걸 선택한 나는 뼛속깊이 소시민적이었던 것 같다.


한 번은 학생들과 점심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팬데믹이 오기 훨씬 전이었으니, 6-7년은 된 일이다. 키오스크 주문이었기 때문에 모두 각자 자기 메뉴를 계산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한 남자 학생이 음식을 주문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본인은 음식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학생들 모두의 숟가락 젓가락을 세팅하고 셀프서비스로 제공되는 반찬들을 담아 나르고 있었다. 음식이 하나 둘 나오면서 그제야 우리는 그 학생이 음식을 주문하지 않은 것을 알았다. 왜 주문하지 않는지를 물으니, 자기는 돈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따가 집에 가서 먹을 거라고 했다. 자기는 매우 많이 먹는데, 이렇게 바깥에서 사서 먹는 건 배도 안 부르고 값만 비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무료로 제공되는 반찬만 먹고 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때-사실은 모두 많이-당황했다. 내가 (선생님이니까) 사 주겠다고도 해 봤고, 나는 (진짜 사실) 양이 적으니까 내 것을 나누어주겠다고도 해 봤다. 그런데 그 학생은 극구 모든 것을 단호하게 거절했고, 선생님이 나눠 주신 음식은 선생님의 식사가 다 끝난 뒤에도 남아 있다면 그때 먹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학생의 당당함과 단호한 기개에 눌려 더 이상 어쩌지 못했다. 그 학생의 태도를 존중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문화의 차이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거구나 생각했다.


아무튼 먹고사는 문제의 가난함이야 어찌어찌 넘어가지고 존중할 마음도 생기고 멋있게도 보이고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건강과 안전에 대한 것이다. 가끔 많이 아프거나 많이 위험한 상황에서 돈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는 학생들을 볼 때면, 안타깝고 안타깝고 안타깝다. 돈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것 아닌가. 큰 화상을 입고도 집에서 치료하느라 며칠을 통증으로 날밤을 새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때는, 오지랖 넓은 이웃집 아줌마가 되고 말았다. 잔소리를 쉴 새 없이 퍼붓고, 당부하고 당부하고, 보험 처리 방법을 알려주고, 그렇게 되고 말았다.

나는 그냥, 영락없는 동네 아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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