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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r 05. 2023

돌아가신 부모는 종교가 되어

자식 옆에 머문다

막역하게 지내던 작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미리 준비한다고 마음이 달라지진 않았을 테지만 마음의 준비랄 것을 할 새 없이 급작스레 돌아가셨다. 우리는 모두 준비 안 된 죽음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내는 없었고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나에게 사촌 동생인 그 아이는 결혼해서 이제 막 아빠가 된 참이었다. 열여섯에 엄마를 잃은 아이는 20년을 아빠와 단둘이 지내고 서른여섯에 자기 가족을 꾸렸다. 아빠와 아들 단 둘이 지내는 인생은 그다지 달콤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세상에 너와 나 단 둘이라는 애틋함은 있었지만 자기가 아버지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평생 자기 뒷바라지하시느라 아빠가 너무 고단하시다고, 그런 말을 자주 했다. 그러던 자기가 결혼을 해, 말랑말랑한 손주를 안겨드리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에게 기쁨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기쁨을 몇 해 누리지도 못하시고 가셨으니, 이 아이는 어떤 마음일지 가늠이 안 된다.


코로나가 등장하던 해 1월이니, 이제 4년 째다. 이제 마흔이 된 아들은 아직도 매달 아버지를 찾아다닌다. 유치원 생 딸과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아직도 한 달에 두 번씩(최소 두 번이라고 말했다) 아버지께 간다. 4년이라면 게을러질 법한 기간이고 잊혔어야 했을 시간인데, 아직도 한 달에 두 번 납골당에 간다니. 나는 상상조차 못 할 마음이다. 세월만 한 약이 없다고 했는데, 시간이 약이라고 했는데, 망각은 신이 준 선물이라고 했는데. 종교도 없는 아이가 아직도 그렇게 자주 내가 성당에 가듯 아버지께 간다면, 그건 종교가 아닌가.


가끔 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내곤 했었다(비록 몇 살 위 누나면서,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을 아직도 '아이'라 부른다).

"나는 아직도 작은 아버지가, 살던 곳에 계속 살고 계신 같아. 추석이면 우리 집에 놀러 오실 테고, 가족 경조사가 있을 때는 어디선가 나타나 반갑게 나를 맞아 주실 같아. 그냥 어디선가 살고 계실 같아."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며 나와 우리의 슬픔을 함께 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아직도 납골당에 찾아다닌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 아이의 마음을 나는 평생 알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숭고하게까지 보이는, 그 아이가 지속하는 하나의 의식. 그것으로 아이는 살고 있을 텐데, 감히 내가 어떻게 그 마음을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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