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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r 13. 2023

남편의 면접관 고찰기

어느덧 남편이 (면접자가 아니라) 면접관의 나이가 되었다. 스물셋, 스물넷 즈음의 대상자를 면접하고 온 남편. 어땠냐고 물으니, 너무 귀여웠다고 한다. 우리 대학생 때와 달리 일찍부터 자신의 취업 분야를 정하고 그 길을 향해 차곡차곡 배움을 쌓아온 것도 기대 이상이었고, 잔뜩 긴장해 덜덜 떠는 모습조차 좋아 보였다고. 다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위해 열심히 살았더라면서, 이렇게 어리고 귀여운 친구들을 뽑으면 어떻게 일을 시킬 수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나는 대번에 그것 보라며, 내가 왜 이렇게 내 학생들을 귀여워하는지, 마냥 귀엽고 어리게만 보는지 이제 이해가 가지 않냐고, 반갑게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나와 남편의 사회 초년생 시절에 대해 생각했다. 남편도 나도 대학 4학년 2학기 때 취업을 해서, 4학년 1학기까지밖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그때는-'라떼는'을 피할 수 없는 일화다-일찍 취직하는 것이 유행이어서, 4학년 2학기는 다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르바이트나 인턴 같은 사회 경험이 거의 없이 바로 회사에 들어갔으니, 그때의 내가 어땠을지 짐작조차 안 간다. 기억나는 건 나는 모든 게 서툴렀고, 서투른 내가 전지적 관찰자적 시점으로 내게도 보였다는 것뿐이다. 좌충우돌 우당탕탕 난리통. 그런데 나는 귀여움을 받았었나? 그런 쪽으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남편에게도 물었다. "우리 때도 그랬어?" "지금 보면 20대뿐 아니라 30대도 초중반까지는 귀엽던데, 우리 때도 선배들이 신입이나 후배들을 그렇게 귀여워했나?"라고 물으니, 남편의 대답. "무슨. 그때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지."라고 바로 대답이 나온다.


요즘 드라마 미생을 다시 보는 중이다. 드라마 제작연도를 찾아보니 이 드라마도 무려 10년 전이다. 내 기억 속 사회 초년생의 삶이 드라마 속에 있었다. 어느 정도 배우고 사회에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준비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발견하는 신입들. 적당히 너그러운 시선으로 봐주면 좋을 것 같은데 각양각색의 무섭기만 한 선배들. 저러면서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고 그리고 늙어가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남편이 연이어 말한다. "우리가 못 느꼈을지도 모르지." "그들은 귀여워했는데 방식이 달랐을지도." 그런가? 아, 맞다. 나는 지금도 나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과 무언갈 먹으러 가면 내가 나서서 지갑을 연다. 나이가 아니라 입사 순서, 직급 순서 이런 게 있는 곳에서는 그곳의 룰에 익숙해지는데 참 오래 걸렸다. 한동안 옛날 방식으로, 내가 배운 방식으로 하다가 어느 순간 '아, 이게 아니구나.' 깨닫고 그곳의 문화대로 배워 나갔다. 그리고 요즘의 '각자 계산' 문화에도 이제는 익숙하다. 23살 처음 입사했을 때, 월급이 적은 곳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적은 월급을 받고 일하는 곳이었는데, 난 간식을 한 번도 내 돈으로 사 먹은 기억이 없다. 회식은 원래 없는 곳이었고, 기껏해야 떡볶이 먹고 피자 먹고 커피 사 먹는 게 다였지만, 나는 응당 예외였다. 깍두기 같은 존재. "어머, 얘~ 애기한테 내가 얻어먹고 어떻게 발 뻗고 자겠니." 게다가 나는 따박따박 말대꾸도 잘하고, 궁금한 건 꼭 가서 팀장이고 부서장이고 붙잡고 물어보고, 시간 내 달라고 해서 독대하고 그랬는데, 한 번도 험한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이것도 저것도, 떡볶이도 침묵도, 다 사회 초년생을 위한 그들의 배려들의 집합이 아니었을까. 그때는 참, 나한테 애기라고 하는 것도 싫었는데.


물론 20년 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었으니까, 세상 분위기도 달라졌지 싶다. 우리는 우리만 몰랐던 환대를 받으며 그 시절을 잘 견뎌, 이제 시니어가 됐다. 청년이 아닌 장년이 됐다. 내가 받은 만큼 좋은 시니어가 되어야 할 텐데, 됐어야 할 텐데. 그래야 내 아이도 그렇게 좋은 시니어들을 만날 텐데. 나는 매일 내 아이를 생각하면서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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